<와일드 카드>는 형사들의 일상을 다룬 영화다. 극악무도한 범인을 잡는 것이 일인 그들의 일상은 과연 범인들의 생활과는 다를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며 나오는 길에 권력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형사는 박봉에 허다한 초과근무,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직업상의 특성등으로 과연 누가 그 짊을 내것인양 떠맡을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왜 그러한 환경속에서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는 것일까를 계속해서 되뇌이게 만들었다.

칼맞고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가정에선 무능한 가장으로 만들어 불릴지라도 그들은 항의하지않으며 묵묵히 일만한다. 아마도 항의를 잠재우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찰업무상의 특성과 거대관료조직의 무사안일주의가 자기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그 조직을 규율하는 관리직의 이데올로기일 뿐이지 일개 형사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형사는 이 경찰업무의 실질적인 집행자임과 동시에 조직의 생산자임을 볼때 그들이 우두머리와 괴리된채 이용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또한 그 조직체계의 사다리를 타기위해 경쟁하며 조직체계의 비리를 두둔하며 그 이데올로기의 훌륭한 집행자가 되어 변화보다는 안정, 대의보다는 집단이기주의에 집착하게 된다. 초점은 더이상 "바로 그"교장이 아니라 사감이나 우등생, 열등생, 수위인 것이다.

권력을 견제하지 않으면 부패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라 진리다. 특히 한국의 경찰과 같이 주민에 대한 일상적, 행정적, 심리적 통제력을 가진 조직이 어디있는가? 개인정보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추진되고 경찰조직이 비대하고 관료화되어 있을수록 이를 악용한 인권침해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는 범인검거의 원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도주자가 범인일지라도 그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는 점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함에도 범인검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것은 죄를 응징할려는 인간의 순수한 분노이기보다는 실적을 올리고 어떻게든 조용조용넘어가기를 원하는 경찰관료들의 안이한 태도때문이다.

도주자에게 총을 쏠수밖에 없는 현실을 형사가 아닌이상 너희들이 어떻게 알겠냐라는 논리는 정진영이 감찰반의 조사를 받을때 잘 드러난다. 3번이상 경고한뒤 쏘라는 이상과 그러다 보면 확실한 현장범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현실사이의 괴리때문에 이상은 현실에서 왜곡되거나 무시될 수 밖에 없다는 논리. 그러나 , 그 현실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는 점은 형사들에 대한 동정을 없던 일로 만들고 일면 그들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이미 많은 형사물에서 잘 드러났듯이 형사들은 범죄조직을 활용하거나 가까이 지내며 그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연 그 놈들을 죽도록 잡고 싶었다는 말이나 혹은 이 놈들때문에 우리는 매일 고생한다는 말이 나올수 있을까? <와일드 카드>에선 그 공생관계의 대상이 아리랑치기라는 비교적 작은 범죄조직이라고 하지만 범인을 잡기위해 범인들과 친해둬야 한다는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범죄의 경중이 문제가 아닌것이다.

이정도되면, 잘 아는 사이에서 나오는 단어가 떠오르게 된다. "적당히". 즉, 범죄를 소탕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관리하는 것이다. 범죄생산자와 통제자가 서로 합작하여 범죄관리라는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야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그들은 여전히 공적인 권력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희생자이자 대의를 따르는 영웅인가?

<와일드 카드>를 지켜보다보면 대립하는 혹은 경쟁하는 논리가 있다. 이는 결국 엉성한 화해를 하게 되는데 바로 양동근의 의리와 책임감, 선배경찰의 무사안일과 책임회피이다. 양동근은 신입형사로서 정력적인 수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선배경찰은 늘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 슬그머니 피하게 된다. 적어도 권위적인 분위기보단 상호책임의 수평적인 팀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양동근은 선배이기 때문에 무책임해도 조직상 면책분위기인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 이는 조직을 잘 아는 고참형사와 세상물정모르고 원칙만을 내세우는 신참형사의 대립을 다룬 <투 캅스>와 비슷한 면이 있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선 아주 다르다할수 있다. <와일드 카드>의 신참 양동근은 세상물정을 모른다기 보단 세상물정을 너무도 잘안다. 정진영의 전근대적인 수사방식에 대해 어떠한 문제제기도 하지 않는 양동근은 조직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칼같이 지적하는 '말잘듣는 엘리트'이다. 말잘듣는 엘리트는 조직의 관점에서 불필요한 보편적 윤리를 들이대지 않지만 조직내부에선 조정의 필요성을 조직의 장에게 제기한다는 점에서 '온순한 양'이다.

결국, 칼을 맞아본 경험으로 인한 두려움때문에 제대로된 팀활동을 할수 없었다고 하는 선배경찰의 고백에 관객들은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한 '인간'만을 생각하게 된다. 이는 그 인간들의 조직인 경찰세계를 권력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 여러군상의 인간이 모여사는 하나의 사회로 인식하게끔 만든다. 경찰이 도주하는 범인의 차량을 둘러싸 유리를 부수고 범인을 끌어내고 반항하는 범인을 구타하는 장면이 충격으로 와닿지 않는 이유는 그를 분노할줄 아는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이고 그가 속한 집단또한 평범하기 이를때없는 집단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조폭이라는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집단이 인간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마당에 형사조직이 무슨 대수냐 할수 있지만, 글쎄다. 경찰의 몽둥이는 경찰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우리를 위해 들게 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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