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렇게 미국역사에 대해 잘 아는 게 없기때문에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단지 미국영화를 쭉 보다보면
1846년에서 1863년(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까지와 19세기말을 다루는 것은 주로 서부영화들이다.
광활한 광야에서 라이플을 들고 인디언을 쫓아내고 정착하는 고독한 건맨들.
당시 미국의 치안능력을 거기까지 미치지못했기 때문에 결국 정착한 땅과 재산을 지키기위해서는 스스로
무장하거나 동네사람들이 자경단을 구성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치안이 부재한 상태와 자기 지역을 지키는 것이 비단 서부만이 아니라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뉴욕도
마찬가지였다는 게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다보니 마치 서부영화가 미국인들의 건국신화처럼 작용하듯이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간의 교체관계도 미국의 질서가 성립하는 과정을 반영한다.
미국 토착민Native(피식! 사실은 조금 먼저 와서 정착한 앵글로색슨계)과 새로 이민온 아이리쉬계의 집단난투극이
벌어지는 첫장면은 앵글로색슨계가 다른 이민자 집단들을 누르고 헤게모니집단으로 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슬로우모션 촬영, 스텝프린팅과 핸드헬드 촬영기법은 왕가위의 <동사서독>에서 맹무살수가 마적단과 싸우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데, <동사서독>이 동작과 화면자체의 미적인 효과를 내는데 치중하였다면
이 장면은 두 이민자 집단간의 싸움이 얼마나 잔인하고 격렬했는가를 드러내는데 치중한다.
또한 이 두 집단의 차이는 각자의 색깔로 드러내는데 앵글로색슨계는 파란색 허리띠, 아이리쉬계 및 스타티쉬 등
셀틱계는 붉은 기운이 도는 옷을 입었다.
이 전투에서 빌리 더 부처(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프리스트 밸론(리암 니슨)을 죽임으로써 아이리쉬계를
복속시킨다. 이후에 프리스트 밸론의 편에 들었던 일부 아이리쉬계는 빌리 더 부처의 수하가 되거나
부패한 경찰이 된다.

16년이 흐른 1862년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의 기운이 감도는 이 시점에서 뉴욕의 로워 맨하탄을 장악한 앵글로색슨계
는 새로 오는 이민자 집단에 대한 텃세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서슴없이 감행하고 링컨의 군대모집에
반발한다. 이 시점에서 이 지역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떠오른 빌리 더 부처는 언제나 성조기를 몸에 감거나
등뒤에 선 형태로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의 치안부재와 지역별로 토호들이 할거하는 일종의 무질서 상황의
미국의 비유이자 또한 이후에 등장하는 미국사회도 결국 이런 더 강한 누군가가 질서의 담지자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프리스트 밸론의 아들인 암스테르담 밸론은 성인이 되어 나타나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하는데
이 암스테르담의 복수극이 이 극이 진행되는 메인 플롯이다. 그렇지만 밸론의 복수극이 인종집단간의 갈등을
담고있기는 하지만 결국 그것도 사적인 복수가 주요 모티브이다. 특이한 것은 밸론의 편에 든 것은 아이리쉬,
스카티쉬, 독일계등 비교적 새로 이민온 집단들이고 기존의 이민자 집단에 비해 주류에 편입되는 정도가 적은
집단이다.

이들은 우선,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을 이용해서 아이리쉬계도 주류 정계에 진입하고자 하나(보안관 선거)
빌리 더 부처에 의해 저지당하고 이를 기화로 대대적인 결전을 벌이려한다. 그러나 이 결전은 대대적인
반징병제 폭동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벌어져서 이를 진압하는 연방군에 의해 진압당한다. 이는 무질서 상황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링컨이후에 비로소 미국사회의 질서가 잡히기 시작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미국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서사시처럼 다가오는 영화들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서부개척사>,
<대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등이 있는데, <갱스 어브 뉴욕>도 이 리스트에 스스로를 포함시키려한다.
암스테르담 밸론의 애인인 제니 에버딘(카메론 디아즈)는 당시 골드 러시가 이는 서부, 샌프란시스코로 가자고
암스테르담을 설득하려고한다. 서부에 대한 당시 미국이민자 집단들의 꿈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이는 곧
동부지역에서의 질서의 구축은 질서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이 서부로 진출하고 서부 역시 이와 비슷한 혼돈의
회오리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때 대립축은 바로 진짜 네이티브 어메리칸과 백인 이주자집단
사이로 이동한다.

영화를 보면서 좀 새로웠던 점은 그 당시에 북군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민자들이 미국에 오자마자
시민권을 얻고 바로 징집되어 미국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전쟁에 동원되었다는 점, 선거에서 이기기위해
투표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투표를 시키는 등, 우리가 알고있는 민주주의 선진국으로서의
미국도 그런 엉망진창의 시절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기존의 할리우드 서부영화에서는 남자들간의
멋진 결투 따위로 낭만적으로 서부를 묘사하곤 했는데 싸움과 혼돈이라는 것은 피가 튀고 절차무시, 안면몰수,
인정사정 보지않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경찰이나 소방관이나 각자 동네 나와바리를 치고
서로 넘지않고 경계선상에서 싸움질을 하거나 삥이나 뜯는 수준으로 미국사회는 결국 이민자 집단간의
갈등과 긴장이 저변에 깔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의란 이들간의 합의에 근거하는 것이고, 이때 합의는
힘이 없으면 무시되는 것이다(영화 속에서 이 두 집단간에 주변적으로 존재하는 중국인 공동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당시의 로워 맨하탄 지역이 어떻게 생겼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하면 그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사극을 찍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 좀 획기적이었는데 예전에는 그렇지못했기
때문에 거대한 세트를 짓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 것도 없는 서부 사막에 가서 서부영화를 찍었다. 그럼 우리도
조선시대나 일제시대의 사대문안을 이런 식으로 재현할 수 있고, 우리나라 사극도 시골 장터를 묘사하는 게
아니라 당시 종로 거리를 재현할 수 있다. 물론 <로드 어브 링>의 그래픽 사용법을 보면 우리나라도
고구려 시대의 안시성 전투나 살수대첩같은 사건을 영화로 재현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피터 잭슨과 마틴 스콜세지가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