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야구단]은 콜롬버스의 달걀과 같은 영화입니다. 영화는 물흐르는 것처럼 손쉬워 보이지만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내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죠. 이 영화에서 '달걀 끝을 깨는 아이디어'는 1905년에 창단된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단인 YMCA 야구단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굉장히 경제적이고 좋은 아이디어죠. 일단 사람들 눈에 딱 들어오고, 당시 역사와 풍습을 도입하면 단순한 스포츠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전혀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영화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YMCA 야구단]은 그런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영화들의 정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아이디어와 비교적 평이하고 공식적인 스토리로 구성된 영화지요. 물론 여기서 '평이하고 공식적인'이란 표현을 손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평이해 보이는 장르 영화의 각본을 쓰는 건 결코 보기만큼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과가 쉬워보일수록 어려운 경우가 많죠.

줄거리는 어떠냐. 영화는 과거 제도가 사라진 뒤 암행어사의 꿈을 접은 선비 이호창을 따라갑니다. 이호창은 우연히 차고 놀던 돼지 오줌보 공을 주우러 YMCA 회관에 들어갔다가 야구라는 스포츠를 접하게 됩니다. 곧 그를 중심으로 조선 최초의 야구단인 YMCA 야구단이 결성되고 이들은 연전연승을 거두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죠. 하지만 그러는 동안 국운은 점점 기울어져 가고, 그 그림자는 우리의 주인공들에게까지 미치게 됩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YMCA 야구단의 실제 역사에서 골격을 취하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모두 허구입니다. 영화가 9회말에 짠하고 나타난 주인공이나 여자 감독 정림을 둘러싼 선수들의 삼각관계처럼 익숙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런 이야기 만들기의 자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스토리의 귀소본능이라고 할까요. 여기에 대해 뭐라고 할 건 없어요. 이런 영화에서 그런 익숙함은 오히려 힘이기 때문입니다.

스토리의 안전함에 대해 불평하지 않아도 되는 진짜 이유는 이 영화의 핵심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로 재미있는 건 '달걀 아이디어'가 제공하는 그 독특한 설정이지요. 한마디로 [YMCA 야구단]은 '갓쓰고 자전거 타는' 영화입니다(정말 그런 장면이 클라이맥스 직전에 나오기도 해요.) 이 속담이 나왔을 당시엔 '갓쓰고 자전거 타는' 게 어울리지 않는 꼴사나운 짓이었겠지만, 21세기 초를 사는 우리에게 이런 문화적 충돌은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빨래 방망이로 공을 치고 짚신을 신고 달리는 이 순박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주는 엉뚱한 향수도 강렬한 편이고요.

영화는 컴컴하기 짝이 없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밝습니다. 여기서 영화는 진지한 시대극 드라마와 코미디 사이에서 조금은 위태로운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몇 십년 전이라면 관객들이 민공의 자살 이후 벌어지는 해프닝을 무례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다행히도 요새 관객들은 여기에 대해 보다 유연한 편이고 그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웃기는 장면들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 드라마와 코미디가 섞여있다는 게 아니라, 드라마가 코미디에 비해 생기가 없고 밋밋하다는 것입니다. 둘의 균형은 잘 맞는 편이에요.

배우들이나 캐릭터들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모두 장르의 상점에서 뽑아온 것 같습니다. 그 시대를 대표할만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데려와 스포츠 장르의 캐릭터들과 결합한 것이지요. 비교적 큰 붓으로 그려졌지만 감정이입이 쉽고 효율적입니다. 특히 송강호가 연기한 이호창이 보여주는 그 무척이나 한국적인 단순무식한 기백은요. 단지 여자주인공인 민정림과 오대현은 좀 갑갑합니다. 민정림은 너무나도 결백한 한국식 여자 주인공이고, 오대현 역시 너무나 당당한 항일독립투사군요. 둘다 조금씩 통풍이 필요해보입니다.

[YMCA 야구단]은 푸근한 영화입니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흐름은 느긋하고 영화의 유머에도 그만한 여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의 그 대책없는 낙천주의에 휘둘리다보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실없는 미소를 지우기 힘들 지경입니다.

기타등등

수퍼 35밀리로 찍은 2.35:1의 영화입니다. 요주의 영화관은 알아서 피해가시길. 제가 오늘 시사회를 본 대한극장 8관도 그런 위험한 장소들 중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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