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추석을 맞이하여 개봉 예정 작들이 차례대로 그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이번 추석개봉 예정 작들은 한국영화의 텃밭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영화가 70%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오아시스>, <패밀리>, 그리고 <연애소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둘 하나 SEX>, <보스상륙작전>, 그리고 지금 소개할 <가문의 영광>까지 가세하면 실로 한국영화의 저력을 발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가문의 영광> 시사회에 가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 많은 않았다. 작년에 개봉한 <친구>나 <파이란>을 관람할 때만 해도 일시적으로 건달이나 깡패를 소재로 잠시 영화에 삽입한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조폭 마누라>를 기점으로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최근에 개봉한 <패밀리>와 <보스상륙작전>까지 조폭이라는 특정 개체의 소재가 일반인들과 공존하며 코믹하게 그려짐으로써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을 볼 때면 조금은 위험이 앞선다. 조폭두목이 고등학교를 다닌다거나, 룸싸롱 접대부와 연계한다거나 검찰이 룸싸롱을 임시적으로 차린다는 등의 설정은 억지에 가깝다. 이제 그것도 모자라 조폭이 엘리트 벤처기업가를 사위로 삼으려 한다.

<조폭 마누라>에서 조폭인 여자가 남편감으로 상반된 공무원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게 <가문의 영광>에서도 조폭 두목의 딸이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 순진남을 남편으로 삼으려는 설정은 유사하다. <가문의 영광>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우연히도 자기 옆에 모르는 여인이 누워있게 되고 그 여인의 집안이 조폭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없이 결혼을 강요받게 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그렸다. 대략적으로 예전에 헐리웃에서 사용하던 코믹멜로물의 코드를 순순히 물려받아 한국식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 <현상수배>를 연출한 감독답게 액션과 코미디, 거기에 섹스와 멜로를 잘 버무려서 한편의 퓨전 액션 코미디 영화를 완성했다.

엘리트 총각으로 출연하는 정준호의 연기와 김정은의 코믹연기가 조화는 잘 되고 있다. 대원군 등의 사극 출연으로 묵직한 연기의 소유자인 유동근의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이미지 변신과 성지루, 박근형, 유혜정의 베테랑급 조연출연, 뜻밖에 진희경의 우정출연 등, 배우들의 연기는 실로 웃음과 코믹 그 자체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영화를 쉽게 좋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시종일관 난무하는 욕설과 상황설정에 맞지 않는 성적 대사들, 갑자기 라스트씬에서 반대파에 맞서 동생의 결혼을 지켜주겠다고 각오하는 오빠들의 비장하면서도 진지한 모습들은 예전 홍콩영화에서 나타나는 홍콩느와르식 결말구조를 표방하고 있다.

올해 봄에 개봉한 <아이언 팜>이나 <서프라이즈> 스타일의 미국식 로맨틱 코미디에 홍콩느와르의 액션을 한국식으로 잘 혼합시켰으나 분명 우리는 잘 염두해 두어야 한다. 마지막 반전이라고 하는 결말구조에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고, 내용전반에 나타나는 배우들의 조폭스타일의 코믹연기는 이제 정형화된 한국식 조폭영화의 지루함과 동시에 실없는 웃음만을 제공한다. 또한 조폭이라는 일반인과 거리감이 있는 특정집단을 희화화시키는 방법이나 친근감을 유발시키는 소재 선정과 이야기 구조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마치 한국영화에는 코믹요소에 조폭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일반공식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한마디로 말해 '코미디+액션+멜로=조폭영화'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는 홍콩의 무분별한 조폭영화를 가지고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2002년 한국영화 현주소에 자리잡고 있는 조폭영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염려나 걱정을 하는 수가 그리 많지 않다. 단지 한때 유행하는 요소로 생각할 뿐이다. 조폭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이 일반화되어 무차별하게 일반 관객들에게 코믹이란 요소로 다가가 판단력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면 이는 분명 문제다. 소재의 다원화와 더불어 한국영화발전에 모두가 함께 심혈을 기울일 때다.

내 의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