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지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책읽는 것을 워낙 싫어하다보니 환타지 소설은 잘 안읽는다.
그렇지만 칼쓰는 사람다룬 영화는 기사든, 사무라이든, 무협이든 다 좋아하긴 한다.
아마 칼쓰는 사람들다룬 영화를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여성분들은 그리 많지않으리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아마 칼쓰는 사람들이 '로맨틱하지'않아서 그런 것같다.
특히 홍콩의 무협영화들이나 일본의 사무라이물들이 그러한데, 당장 죽은 스승의 복수나
주군을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할 판에 여자들과의 로맨스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노릇아닌가.
의무를 가진 자, 여색을 멀리 할지어다.

그래서 이런 로맨스 코드의 부재을 뒤집어엎어서 상대적으로 성공한 영화가 바로 '와호장룡'인데
주윤발과 양자경의 중년의 사랑얘기, 장진과 장지이의 신세대 사랑얘기를 섞어놓은 것이
주효했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는 한국에서 한때 선풍을 일으킨 무협만화 '열혈강호'를 들 수 있는
데 순정만화 주인공으로 나올 법한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여학생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무협만화를 만들어놓은 것이 성공의 포인트인 것같다.

한편 이에 비해 서양의 판타지물은 로맨스 코드가 가득 담겨서 여자들이 사랑에 빠질만한
남성캐릭터를 만들어내곤 하는데 좀 귀엽고 낭만적인 '조로'나 귀네비어와 사랑에 빠지는
'랜스로트'같은 인물들이 그런 축에 끼는 것같다. 그래서 '백마타고 오는 왕자님'이라는 판타지
는 있어도 그에 비견할만한 캐릭터가 동양에는 별로 없지않은가. 글쎄 '일지매 一枝梅' 정도.
그것도 고우영이라는 만화가가 '일지매'를 좀 여성화된 미소년으로 그려서 그런 이미지가 구체화
된 것이지.

이렇게 기사가 적을 꺾고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가 기사/영웅담얘기의 핵심이라면 지금부터
얘기할 <로드 어브 더 링>의 기사들은 약간 벗어나있다. <로드 어브 더 링>에 나오는 기사중의
기사 아라곤(비고 모르텐센)은 이런 낭만적인 기사라기보다는 30대 후반의 중년의 남성에
가깝게 등장하는데, 그는 왕이 되지 못한 떠돌이 왕자이며, '반지'의 전달자인 프로도를
지키는 일을 맡기 전까지는 삶의 의미가 없었던 자이다. 그는 반신반인인 아르웬(리브 타일러)
과 사랑에 빠지지만 영원히 사는 이들과 달리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기에 이들의 사랑은
불완전하고 오히려 이별의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뻔히 상대가 안되는 줄 알면서도 만명이
넘는 적들에 맞서는 300명의 로한인들 곁을 떠나지않는다. 시니컬하고 지쳐보이는 외관과
승산없는 줄 알면서도 싸움에 임하는 그의 비극성에 맞닿아있는 인물들은 <삼총사>의 아토스
나 4,50년대 필름 느와에 나오는 험프리 보가트를 연상시킨다.

무언가 임무를 완수하기위해 몇사람이 팀을 이루어 여행을 떠나는 얘기는 그리이스 신화에서는
'이아손과 아르고스 원정대Jason and Argonaut'얘기가 있고, 중국에서는 '서유기'가 있으며
다소 현대화된 얘기로는 할리우드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가 있다. 이런 경우
개성있는 등장인물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거나 아니면 개별 등장인물들이
겪는 에피소드들로 전체 이야기를 꾸릴 수 있다. <로드 어브 더 링> 1편 '반지 원정대'의
후반부는 이 팀의 팀원들이 갈등/협력하는 이야기이고, 2편 '투 타워스'는 각 인물들의 에피소드
의 변형이다. 1편의 마지막에서 팀은 2-3명씩 세 팀으로 깨졌고 이 세 팀이 각각 겪는 이야기가
바로 2편이다. 프로도와 샘이 스미글의 인도를 받다가 보로미어의 동생에게 붙잡혔다가 풀려나는
얘기, 메리와 피핀이 숲의 정령을 만나서 이들의 협력을 이끌어내서 나쁜 마법사 사루만의 본거지
를 공격하는 얘기, 그리고 아라곤, 김리, 레골라스가 되살아난 간달프와 함께 로한사람들을 도와
사루만의 군대를 격퇴하는 얘기.

그렇지만 얘기는 기본적으로 어린 주인공의 모험담인데, 이는 '구니스'나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또는 '보물섬'이 이런 축에 낄 수 있다. 한편, 어른들은 전술한 아라곤/
보가트의 캐릭터에 동일시를 할 수 있다. 내면의 갈등을 보여주는 두 인물은 프로도와 아라곤
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그렇지 않다.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서스'나 '아도니스'같은
미의 이미지 '리골라스'의 주요 기능은 관상용이고, <니벨룽갠의 반지>에 나오는 난장이왕
'알베리히'의 무사 이미지와 숏다리 컴플렉스로 관객을 웃기는 난장이 광대를 섞어놓은 '김리'
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C-3PO와 R2D2, '춘향전'의 방자의 기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