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족처럼 죽기와 엔트족 처럼 생각하기

<반지의 제왕>은 <해리포터>와 다르게 영화사 속에서 비중있게 다뤄질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흥행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 단지 상업영화로 보기에는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주기 때문이다. 박진감 있는 전투씬과 중간계라는 공간의 완벽한 구현도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서도 무언가 묵직하게 남는 것이 있는 영화라는 점, 그것이 이 시리즈가 지금은 시들하지만 <스타워즈> 시리즈에 이은 대박 시리즈가 될 것이 분명한 이유이다. (이하 스포일러성 약간 있음)

1. 엘프족

영화에서는 엘프족이라는 종족이 나온다. 1편에서 보다시피 엘프족들은 수명이 무제한이다. 그런 엘프족들은 영원한 것들에 대하여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사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 보인다. 그래서 이들은 중간계에서도 매우 모호한 입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들에게 전쟁은 오랜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영토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엘프족은 결국 참전을 선택한다. 영화에서 내가 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전편에서 매우 거만하게 그려진 엘프족의 전사가 칼을 맞고 죽어가면서 죽은 동지들의 시신을 쳐다보는 장면이였다. 이 장면을 나는 이 영화의 최고 장면으로 꼽는데 오크족과 인간, 이들과 엉켜서 피흘리고 싸늘해진 동료들을 보면서 대체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만약 내가 그 엘프라면 인간과 오크만이 겪게 되는 죽음에 대한 어떤 분위기를 느꼈을 듯 보인다. 적극적인 선택으로 인한 책임으로 따라온 당연한 죽음, 그 한계지워진 생이라는 장 속에서 그는 아마도 지금껏 살던 생과는 전혀 다른 생의 분위기를 느끼지 않았을까?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의 차원에서 '영화가 좋다' 차원으로 넘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과 다르게 죽음을 겪지도 않을 수 있는 존재가 스스로 타락하여 죽음을 선택하므로써, 제 3자의 시선에서 인간의 '죽음'이라는 사태에 대해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그런 점에서 이 엘프는 어떻게 보면 행복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짧은 순간이지만 생의 다른 축을 살아봤기 때문이다.

2. 엔트족

이들은 숲의 지키미다. 이 영화가 가지는 매력은 인간적인 것에서 벗어났을 때도 보여지는 전쟁의 참상이다. 절대권력의 상징으로 보여지는 절대 반지는 인류공멸의 길이라고 일컬어지는 핵전쟁을 상정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하이데거는 이 시대를 가르켜 '핵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핵'에 대해 약간은 너그럽다. 그리고 핵보유국이 당연히 강대국이 된다. 핵을 가지고 있으면 인간에게 유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핵이라는 사람을 죽이는 가장 고도화된 '전쟁무기'는 '자국민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명분으로 폐기 되지 않는다. 약간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야기의 초점을 다시 엔트족으로 돌려보면, 이 엔트족이 등장하므로 인해 인간은 호빗족과 오크족 그리고 드워프족 그리고 엘프족들과는 전혀 다른 외형을 지닌, 전혀 다른 분자구조를 지닌 종족을 만나게 된다.

이들에게도 인간성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호빗들은 놀란다. 그렇다면 이 엔트족의 등장과 앞서 말한 핵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환경을 위해서라면 핵이라는 것은 모두 폐기되어야한다. 단지 핵이 터지면 다 죽으니까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를 보는 건 인간 뿐만아니라 나무들과 같은 식물들에게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지구에는 인간이라는 동물말고도 수많은 유기체, 무기체가 있다. 이것을 인간은 종종 까먹는다. 그리고 이것들을 도구화삼아 지구를 망친다. '무기'로 '이익'을 유지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로 '지구를 개발함'으로 '지구를 보호'한다고 한다. 그것은 엔트족이 말한 것처럼 오크들이나 인간들이나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1차 대전, 2차 대전에 대해 인간들이 내리는 의미는 어느 편에 서느냐,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엔트족의 입장에서 봤을때 환경파괴를 순식간에 해놓은 몹쓸 짓이 되는 것이다.

그들도 전쟁에 참전한다.

3. 그리고 인간

사실 이 영화에서 '인간'은 말도 못하게 허약한 족속으로 나온다. 그리고 주인공도 인간이 아니다. 호빗족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런 종족이 실재하는가라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인간은 지구위에 살면서 지구를 더럽힌다. 망쳐놓는다는 표현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촛불시위가 두개로 나뉘었다. 반전과 반핵을 이야기 해야한다는 쪽과 반미가 중심이 되어야한다는 쪽으로..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인간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길은 반전과 반핵이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문제에 가장 실질적인 해결책은 반미에 있다. (미국이 가장 강대국인 동시에 가장 많은 핵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탁석산 저 [한국의 주체성](책세상문고)를 일독하는 것을 권한다.

인간이라 엘프족처럼 죽고 엔트족처럼 사고하기가 쉽지 않음을 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사고하도록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 단지 죽음의 차원이 아니라 의미의 차원에서 그것을 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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