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세운 네 가지 가설 중 하나가 ‘자살이 언제나 비극은 아니다’였다. 이것은 철저히 비교우위에 의해 타당성을 얻는다. 비극적인 삶을 존재에 대한 의무감만으로 유지해야 한다면 그것이 죽음보다 나을 것이 없으리라는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런 와중 갑자기, 난데없이, 별안간 장국영이 사망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자의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다. 관습적 신념체계를 가로막아놓고 그리도 자유로워졌건만. 참으로 이상했다. 나는 그의 죽음이 슬펐다. 가슴 쓰렸다. 다양한 해석을 뒤로 하고, 죽음이라는 것은, 더더군다나 자의에 의한 죽음은 독설을 이론으로 무장한 이 ‘가설’들을 한방에 거두절미할 것을 명령했다. 단순히, 무턱대고, 그저 슬픈 것이었다. 다른 의미를 끌어다 붙일 수 없었다. 모든 매스컴에서 회자되었듯 그리 공허하게 사라지는, 자궁의 따듯함을 좌절당한 채 뒷걸음치는 <아비정전>의 발 없는 새, 아비의 모습이 떠올라 그와 나의 관계가 스타와 대중이라는 것도 잊은 채 한동안 멍해 있었다.

가끔씩, 나는 장국영이 <아비정전>에서 추었던 맘보를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 장면만큼 비틀린 자아의 ‘위악’적 냉소를 보여주는 절묘함은 없기 때문이다. 순전히 자신에게 도취된 상태로 흥겨운 리듬에 빠지는 아비의 가볍고도 무거운 모션, 그것은 우리에게 깊이 사고하라고 요구하는 신이다. 여자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난 뒤 짓는 농염한 미소는 위험할 정도로 유혹적이다. 물론 그 유혹에는 진실이 없다. 루루에게 귀걸이 한 짝을 흔들어대는 천진난만함은 일종의 조롱이었다. 양어머니의 애인을 걷어찬 후 족제비 빗으로 단정하게 머리칼을 정리하는 잔인무도한 냉정함은 맘보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그렇다 해서 아비를 미워할 수 있을까. 열대우림 속 불안정한 걸음걸이는 끝내 외면당하고 마는 그저 고독한 한 사내의 모습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아비정전>의 ‘아비’의 캐릭터를 어떤 상징으로까지 올려다놓는다. 그 상징이 의미하는 바는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상처를, 회복시키지 못한 채 자의에 의해 키워낸 비틀린 자아다.

맘보왕의 죽음이 더 없이 슬펐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비정전>은 나의 베스트 무비다. 또한 영화를 통해, 여타 표현장르들에게 얻고자 했던 모든 감성적 요구는 ‘아비’라는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다. 그리고 공감이다. 장국영이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애정 어린 결핍의 이미지는 아비로 인해 제대로 어필되었다고 믿는다. 그가 아니었다면 덜 나쁜 놈이었을 것이고, 덜 슬픈 인물이었을 것이다. 배우와 영화 속 인물의 동일시는 때때로 멍청한 짓이다. 그것은 깨지라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국영과 아비라는 존재의 동일화는 이제 내게 있어 박제가 되었다.

그가, 장국영이 사라졌다. 맘 아프다. 나는 언제고 그가 그리울 때면 <아비정전>을 다시 볼 것이다. 그러나 정말 나쁘게도, 고약스럽게도, 이전보다 아픈 마음을 가지고, 더한 공감을 가지고 <아비정전>의 아비와 교류할 수 있게 되었음을 한편으로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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