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새해를 맞으며 요즘처럼 `시간은 강물처럼 흐른다'는 말을 실감하는 때가 있을까. 새로운 시간과 만나면서 만난 시간만큼 아이는 자라고 어른은 늙어간다. 영화 <텐 미니츠 트럼펫>은 시간을 주제로한 영화다.

`시간은 이야기 안에서만큼은 자유롭게 흐른다'는 허츠 프랭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텐 미니츠 올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영화가 기획됐고, 7명의 세계적인 감독들의 10분짜리 영화 7편을 엮어 영화 <텐 미니츠 트럼펫>(원제 : Ten Minutes Older & The Trumpet)'이 탄생됐다. 영화제목의 트럼펫은 영화 한편 한편이 바뀔 때마다 트럼펫이 연주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시간은 강물, 모든 창조물의 막을 수 없는 흐름. 사물은 순식간에 존재를 잃고 다른 사물에게 그 자리를 내준다. 오직 사라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한 구절이 햇살에 일렁이는 물결 위로 새겨지며 영화는 시작된다. 휴 마세켈라의 트럼펫 연주를 타고 물(시간)이 흐르고, 물결위로 한편의 영화가 흘러간다.... 그렇게 1o분의 단편영화 7편이 차례 차례 강물 위를 흘러간다. 7편을 모두 보고나면, 그곳에는 탄생에서 죽음까지 희로애락, 생로병사의 한 생애와 한 시대가 녹아있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키 카우리스마키(핀란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빅토르 에리스(스페인), 독일 뉴저먼시네마 운동의 기수 베르너 헤어조크와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의 빔 벤더스(독일), <천국보다 낯선>, <고스트 독>의 짐 자무쉬, <말콤 X>의 스파이크 리(미국), <패왕별희>의 첸 카이거(중국) 등 7인의 감독들은 시간이라는 주제로 시베리아행 기차 안에서 스페인 시골에서 남미 정글에서 트레일러 안에서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뉴욕 거리에서 개발이 한창인 북경 공사장에서, 각각 자신만의 독특한 영상을 10분에 담아 낸다.

감독들의 독특한 영상 언어만큼이나 영화음악도 오래 귓가를 맴돈다. 테마곡인 트렘펫 연주를 듣노라면 깊은 밤 멀리서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지나가는듯 아련한 울림이 귀를 적신다. 특히 짐 자무시의 `실내-트레일러-밤'에서는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10여분 동안 흐르는데 단조로운 흑백 영상과 글랜굴드가 연주하는 간결한 피아노 선율이 매혹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영화음악 선곡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빔 벤더스는 모던락 그룹 EELS의 비트 강한 음악을 빠른 영상에 쏟아 부며 위급한 상황을 감각적으로 표현 하고있다. 영화음악 사운드 트랙이 발매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지만 얼마전 비디오와 DVD가 출시되어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됐다.

<텐 미니츠 트럼펫>은 2002년 칸느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부문에 초청돼 갈채를 받았던 영화지만, 세계 최초로 개봉한 국내에서는 극장을 잡지 못해 서울 단관개봉(코아 아트홀)에 그쳤었다. 지금 하이퍼텍 나다에서 `2002 마지막 프로포즈' 기획 프로그램으로 상영중이다.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1월 9,12,14,16일 각 1회 : 02-766-3390 티켓 5000원). 장-뤽 고다르, 마이크 피기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을 비롯한 8명의 감독들이 참여한 '텐 미니츠' 2부작인 <텐 미니츠 첼로>도 곧 개봉될 예정이란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당신만에 10분을 찾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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