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특사

-이 세상에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옷 털어서 먼지 나오지 않는 인간 없다'라는 말이 있다. 다들 한가지씩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인간은 사실 존재하기 힘들다라는 말이다. 물론 이런 말들이 죄를 정당화시킨다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죄판을 하는 것 자체에도 모순이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죄의 판가름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나 보이지 않게 지은 죄를 가진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버젓이 형을 내린다는 것도 어쩌면 웃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주유소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을 통해 감독특유의 페이소스를 드러낸 김상진 감독의 신작 '광복절특사'는 그런 점에서 나름대로 사회에 내던지는 독설을 통해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

재필은 면회 온 애인 경순으로부터 결혼한다라는 말을 듣고 탈옥을 결심한다. 무석은 빵을 훔쳐먹은 죄로 고참죄수가 된 신세지만 어느 날 밥숟가락을 발견하는 순간 땅굴파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재필과 무석은 탈옥을 하는 목적은 다르지만 같이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광복절 특사에 자기들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교도소로 가는 도중에 생기는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그렸다.

재필 역을 맡은 설경구는 '박하사탕'과 '공공의 적', '오아시스'를 통해 그의 연기력을 입증한바 있다. 액션연기, 삼류건달연기, 고뇌하는 지식인연기, 그리고 이번에는 코믹한 모범수 연기 등. 그를 보면 가끔 예전에 배우 문성근씨가 생각난다. 마스크도 비슷하지만 연기하는 스타일이 약간 그의 향취가 느껴진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칭찬만 늘어놓고는 싶지 않다. '박하사탕'과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까지는 변화가 보였다. 하지만, '공공의 적'과 '오아시스'에서 보여준 연기가 이번 '광복절특사'에서는 연장선인 듯한 느낌이 들어 약간의 신선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설경구 특유의 트레이드마크연기를 정착하는데는 성공했다고 보지만 너무 고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면 배우로써 긴 생명력의 유지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차기작품 선정에서는 조금의 변화가 있는 연기에 선택이 필요할 것이다.

무석 역에 차승원은 모델출신이라는 말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2000년 '리베라 메'에서 사이코연기를 비롯해서 '신라의 달밤'과 2002년 '라이터를 켜라'까지 얼굴과는 정 반비례하는 망가지는 연기를 통해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됐다. 이번 '광복절 특사'에서는 그가 코믹연기의 지존임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그가 빵 때문에 감옥소에 왔다는 과거 모습을 연출할 때 빵을 훔쳐서 집어먹는 모습은 정말 이 영화의 압권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준다.

경순 역에 송윤아는 사실 2000년 박중훈과 함께 열연한 '불후의 명작'이후 이럴 듯한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화보다는 TV드라마가 더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995년 KBS 슈퍼탤런트 출신이라는 명예 아닌 명예가 그녀를 폭넓은 연기를 구사하는데 제한을 주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한번 더 도약할 수 있는 시발점을 주었다. 그녀의 푼수 끼 있는 연기변신이 아마도 이제 그녀의 새로운 연기인생을 예고하는 듯 싶다.

감독 김상진은 사실 '주유소습격사건'이 데뷔작이 아니다. 1995년도 '돈을 갖고 튀어라' 1996년 '깡패수업'등에서 박중훈과 호흡을 맞추며 1998년 '투캅스3'를 연출했다. 대체로 그는 '쌈마이영화'를 중심으로 그가 하고픈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주유소습격사건'이나 '신라의 달밤' 그리고 이번 '광복절특사'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만의 연출방식이 눈에 뛴다. 소위 말해서 아웃사이더들이 사회에 중심이 되는 인물들을 한데 몰아넣고 그들만의 사회에 대한 불만과 독설을 풀어 해친다. 관객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마당전과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서민층들이 양반의 횡포에 간접적으로 대응하는 해학적인 모습이 담겨진 마당전! 동시에 거기서 김상진감독은 페이소스를 이끌어낸다. 결말구조에서 대체로 이러한 스토리라인을 취하면서 우리에게 깊게 담겨진 지배층에 대한 분노와 응어리를 풀어준다. 과거 조선시대에 양반전이나 배비장전 등에서 느껴지는 해학의 웃음이 지금 현재 김상진 감독을 통해서 서서히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그것을 통해 우리는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며 그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생각이 난다.

영화 '광복절특사'는 결말구조에서 배우 강성진의 대사를 통해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것 죄 없는 놈들이 하나도 없구만, 다들 죄인이네, 이것들!!!" 그렇다 어쩌면 정말 교도소에 있어야 할 사람들은 지금 거기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조연 급 배우 유해진, 이희도, 강신일을 통해 우리의 현재 사회상에 대한 냉소적인 입장을 코미디로 희화화시킨다는 점에서 분명 이 영화는 가치 받을 만한 작품이라고 본다. 지난주에 이어 12월 휴일 다시 1위를 지켰다. 관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충분히 오랫동안 1위를 고수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개봉 2주만에 140만 관객을 모은 것을 미루어 볼 때 200만 관객은 무난할 것으로 본다. 다만 김상진의 코드가 다음 작품에서는 그 방식에 있어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그 정신은 유지하되 연출력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으면 좀더 신선하게 관객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