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70대, 사랑과 섹스에 대한 진실 혹은 대담-

청춘가
이팔은 청춘에 소년몸 되어서
문명의 학문을 닦아를 봅시다
여울의 바둑돌 부티껴 희고요
이내몸 시달려 백발이 되누나
세월이 가기는 흐르는 물같고
사람이 늙기는 바람결 같구나
눈속의 푸른솔은 장부 기색이요
학두루미 울고가니 절세명 승이라
역발산 기개세 항우의 장사라도 우미인 이별에 눈물이더라
무정세월아 가지를 말어라
장안에 청춘이 다 늙어 가노라
청춘 홍안을 네자랑 말아라 덧없는 세월에 백발이 되누나
요지일월 순지건곤이요 태평성대가 여기로구나
동두천 소요산 약수대 꼭대기 홀로선 소나무 날같이 외롭다
(이하 54줄까지는 생략)

이 청춘가는 1920년을 전후로 해서 많이 부르게 된 노래로서 예전에 부르던 '이팔 청춘가'를 약간 변조한 노래로 곡조도 비슷하고 1,2절까지의 사설도 같다. 청춘가는 글자 그대로 청춘을 구가한 노래이며 청춘남녀의 신세 한탄이 나오며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로서 옛날 글방 훈장처럼 의젓하게 청춘을 훈계한 것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곡조는 단조롭지만 씩씩하고 경쾌하며 비애조가 섞여 있는 이 노래는 지금도 많이 애창되고 있다. 12월 6일 개봉하는 영화 '죽어도 좋아'는 바로 이 청춘가를 기본 포맷으로 잡고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필자가 이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2한일월드컵이 끝나고 무더운 한여름의 중심에 서 있을 때였다. 모 일간지에서 인턴기자로 있을 때 그 당시는 사회부소속이라 기자시사회를 갈 시간적 여유가 없던 터라서 다른 영화담당기자로부터 귀동냥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용인즉 70대의 노인부부가 적나라한 섹스 신으로 충격을 던져주었다는 것이다. 성기노출은 기본이거니와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나이 드신 분들의 '오럴섹스'도 나오며 그들의 성생활이 그다지 우리의 기존 정서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과연 이 영화가 개봉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때 그 영화의 정체성을 다같이 한번 파악했으면 했다. 아니 한번 2002년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성 개념에 대한 현주소를 느끼고 싶었다. 7월 등급보류이전에 완전 노컷으로 보여준 남산 감독협회시사실에서의 1차 기자시사회를 놓치고 11월 주요부분(?)을 검게 처리한 2차 기자시사회를 다시 놓치며 이 한해의 마지막 끝인 12월로 넘어가서 일반시사회장에서 무삭제라는 허울좋은 반 불구가 된 필름을 통해 나는 이 영화의 진의여부를 긴장된 마음으로 판가름하고 싶었다.

일반시사회장은 그 동안 등급보류를 먹을 정도로 화제를 모은 탓인지 많은 인파들로 몰렸다. 조금 웃긴 일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면서까지 이 영화를 관람하는 어느 부부의 모습이었다. 사실 이 영화는 18세미만 관람불가다. 아이들을 동석하면서 까지 볼만한 가족영화는 아니다. 또한 재미보다는 그리고 웃음보다는 그 이상의 긴장감과 사실성에 입각하여 이 영화를 볼 필요가 있다.

박치규 할아버지는 공원에서 우연히 이순례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외로운 두 사람은 초라한 듯한 냉수 한 그릇과 신식 사진 촬영 한 장으로 결혼식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초라한 결혼식에 비해 그들의 결혼생활은 20대 신혼부부 못지 않은 왕성한 격정적인 사랑이 이루어 진다. 사랑과 싸움, 그리고 다시 사랑하는 그 노부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영화 '죽어도 좋아'는 용기가 있는 작품이다. 사실 대역 없이 있는 그대로 노부부의 정사신을 담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4개월 동안에 이 노부부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무너뜨리게 된다. 현재까지 실버세대로 통하는 70대들의 노인 층에 있어서 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금지 시 된 것이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성적 능력을 무시한 채 우리는 방관된 자세로 일관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새로운 시도이자 실험적 영화로 분류될 수 도 있다.

이순례 할머니가 집으로 오는 길을 마중 나가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 같은 할아버지, 갑자기 친구와 수다를 떠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는 할머니 때문에 온 시장바닥을 누비며 급기야는 화가 난 아기 같은 할아버지, 한글을 가르치면서 손바닥을 때리는 선생님과도 같은 할아버지, 아픈 할머니의 몸보신을 위해 닭을 손 수 잡아 삼계탕을 끓이는 어머니와도 같은 할아버지, 사랑을 나누면서 할머니와 계속 교감을 나누고 있는 애인 같은 할아버지, 그는 분명 육체적인 사랑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도 그런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다.

그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통해 우리들에게 그 진실한 사랑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지나간 시간들이 앞으로 남은 시간보다 많기에 그들은 늦게 찾아온 그 사랑에 모든 정열과 노력을 쏟는다. 단 1초라도 그들에게는 너무나 그 시간들이 소중하다. 한시라도 자리를 뗄 수 없는 그들의 순박한 사랑의 모습 속에서 도리어 젊은 우리들은 고개를 숙이게 된다.

제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고 제7회 부산국제 영화제 관객상,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특별언급 등 3개 부분 수상과 함께 제55회 칸느영화제 '비평가 주간'부문 초청 등 화려한 경력을 통해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3차 등급심의를 거쳐 무삭제를 했다지만 아직까지도 성기노출에 대한 편협적인 시각은 개선되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스런 입장이다. 그것이 포르노와 예술영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작용하는 시대는 이미 지난 것 같은데도!!! 이러한 것은 아직도 영등위가 관객의 수준을 무시하는 행위다.

각설하고 아무튼 이번 개봉은 네티즌들의 힘이 컸다. 그들의 열성적인 호응에 힘입어 그나마도 무삭제 개봉이라는 쾌거를 올린 것이다. 영화 '죽어도 좋아'를 통해 아무쪼록 그들의 길고도 영원한 사랑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추신: 박치규 할아버지 , 이순례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