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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제국 (1976, In the Realm of the Senses)
일본 / 일본어 / 에로, 컬트, 예술 / 104분 18세관람가 /


출연: 후지 타츠야, 마츠다 에이코, 나카지마 아오이
감독: 오시마 나기사
각본: 오시마 나기사
촬영: 이토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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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지수]74.5%

작품성  (7/10)
대중성  (6/10)
네티즌  (7/10)
[16명]  





일본의 어느 기생이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정부(情夫)를 교살한 뒤 그의 성기를 잘라버리는 충격적인 실화 '아베 사다' 사건을 영상화한 작품. 79년 <열정의 제국>과 더불어 관능적, 의식적 性을 주제로 한 문제작이다. 오시마는 이 영화를 계기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다. 영화는 다양한 성행위에 몰두하는 부부가 편집적이 되고, 결국 극단으로 치달은 결말이 남자에 대한 여자의 광기로 드러난다.

1936년에 일어난 '아베사다(阿部定)사건'은 일본의 연애사 중 가장 센세이셔널한 실화 사건이다. 아베 사다가 애인인 기찌를 교살, 그의 남근을 잘라 그녀의 몸 속 깊숙히 넣어 갖고 다니다가 체포된 사건으로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2.26 사태'가 있은 지 3개월 후인 5월 18일이었다. 아베가 체포당할 당시에는 호외까지 나올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이 아베 사다 사건은 오오시마 나기사가 영화화하기 전에도 몇번이나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소재가 된 실화도 일본 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이었지만, 영화 또한 당시 실제 정사 장면(혹은 실제 정사 의혹)으로 인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프랑스 영화 제작자 아나토르 도만의 제의로 이뤄진 이 영화에서 오시마 나기사는 일불합작 영화인 것을 최대한 이용하였는데, 일본에서는 성기나 성교 장면을 그대로 찍은 필름은 형사법이나 영륜(映倫)의 벽에 부딪쳐 제작이 불가능하다. 그 방법론으로 생각해낸 게 프랑스에서 필름을 수입해 일본에서 촬영하고, 현상하지 않은 채로 다시 프랑스로 보내 그곳에서 현상 및 편집 등 최종 마무리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먼저 프랑스판이 완성된다. 그리고 1976년에 칸느영화제에 출품되어져 절찬을 받고, 스웨덴 이탈리아 덴마크 영국 카나다 미국 등 완전판으로 상영이 가능한 나라에서부터 상영 신청을 받았다. 칸느의 성공에 의해 프랑스 검열 위원회의 제제는 전혀 받지 않았다. 1976년 가을에 공개되어진 일본판은 영륜 이전에 검열기관에서 엄청나게 수정돼 오리지날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공개 직전에 출판된 시나리오가 검열 당국에 적발되어, 1977년 8월 15일 동경지검은 오오시마 나기사 감독을 외설물 배포 혐의로 형사 기소한다. 이로써 '아이노 고리다' 재판이 시작되어 1979년 10월 19일 판정공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지만, 동경지검은 이것에 불복해 공소한다. 결국 이 사건은 십수년간의 지리한 투쟁 끝에 무죄가 인정되어 오오시마 나기사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오시마 감독은 "여자였기에 남자의 장난감으로 반생으로 살아온 여인 사다가 오로지 사랑하는 남자와 영원히 합체하고 싶다는 간절한 애처로움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기괴하고 충격적일 수 밖에 없는 설정이다. 오오시마 나기사가 어느 좌담회에서 이 작품의 제작의도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베 사다는 상당히 여러 사람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만들어왔지만, 결국 아베 사다의 말을 빌려 작품을 풀어간다. 더욱이 그녀의 조서 내용을 기본으로 그녀가 남근을 잘라 가지고 다닌다는 그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너무 재미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도중에 아베 사다의 일생을 써볼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그것을 '드망'에게 제안했더니 '그건 아니다. 나는 일생 같은 것은 알고 싶지 않다. 어디까지나 고리일 뿐이다'고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그는 '사다'가 아닌 '고리다'라는 제목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오시마 나기사는 1973년 프랑스 제작자인 아나드루 드망으로부터 일불합작의 포르노 영화를 만들자고 하는 제안을 받고 망설이던 차에 1975년 봄 프랑스에서 포르노가 전면적으로 해금되어진다. 이에 드망으로부터 1억엔의 자금을 제공받은 오오시마 나기사는 프랑스에서 '포르노의 전면적 해금'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는 영원히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먼저 만들어졌던 아베 사다 작품은 1976년이라고 하는 일본의 정치상황과 남근을 잘랐다는 점에서 아베 사다로 초점을 이동하고 있지만, 오오시마 나기사의 아베 사다상은 그것이야말로 고리다(鬪牛)의 제목 그대로 애욕의 격투 끝에 남근을 잘라버리는 것으로 끝나고 있으므로, 아베 사다는 사랑의 승리자로서 군림하게 된다. 즉, 오오시마 나기사의 아베 사다는 오늘날의 성 상황에 대해 극히 도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24년만인 2000년에 국내 소개되는 상영분은 인터내셔널 버전 91분에서 성기 노출 씬 등이 5분가량 삭제되어 86분짜리로 소개되었다. 상당한 화제를 모았지만 관객은 14만 정도.




나가노의 요리점 '요시다야'에서 일하는 여종업원인 사다는 그곳에서 주인인 이시다 기찌조와 만나 순식간에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늦은 밤 응접실이나 객실 등에서 지속적으로 밀회를 나누다가 기찌조의 아내에게 발각된 사다는 요리점을 나가게 된다. 도중에 생활비가 떨어져 사다가 나고야의 중학교 교장인 오오미야 선생한테 돈을 빌리러 외출하는 것 이외에 이 영화는 거의 기찌조와 사다의 베드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오미야 선생은 사다가 부초와 같은 생활을 그만두고 성실해진다면 조그만 요리집을 내주겠다고 한다. 그로 인해 사다는 요시다야로 일을 배우러 나갔던 것. 1936년 5월 18일 동경 아라가와 구의 요정 마사키에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수사 결과, 피해자는 나카노구에 있는 요정 요시다야의 주인인 이시다 키치조우. 가해자는 요시다야의 전 종업원, 아베 사다로 밝혀진다. 키치조우의 사인은 교살. 성기가 잘려져 있고, 이불과 시체에는 '사다와 기치, 둘이서 영원히'라는 문구가 붉은 피로 쓰여 있었다. 3개월 동안 밀애를 나누던 두 사람은 키치조우 부인을 피해 4월 23일 같이 도망을 나와 요정 마사키에 틀어박힌 후, 애욕의 생활에 빠져들었다. 사다는 키치를 영원히 자신의 남자로 남기기 위해 그의 목을 조르게 된다. 5월 20일 시나가와역 주변 여관에서 체포된 사다의 손에는 종이에 꼭 싸인 키치조우의 성기가 쥐여 있었다. 그녀는 경찰에게 매우 침착한 태도로 '제가 아베 사다입니다'라고 이름을 밝혔다. 이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사건은 당시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했다. 하지만 전쟁에 지쳐있던 사람들에게 호기심어린 사건으로 비춰졌고 동정어린 여론에 따라 아베 사다는 징역 6년형에 처해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1936년 5월 18일의 일이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날부터 3개월반 동안의 사랑의 도피행각은 겨우 25일간이었다. 4일 후 자른 남근을 몸안에 넣고 다니던 사다는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해말 징역 6년의 판결을 받게 되었고, 곧이어 형을 살게 된다. 사건은 일본 전체를 흔들었으며, 사다에게는 불가사의하게 인기와 동정이 집중한다. 그것은 '같은해에 일어났던 젊은 군인에 의한 대규모의 반란사건을 계기로 급속하게 전쟁의 길을 달리기 시작한 일본사회 안에서 사람들이 이 사건을 한모금의 청량제로 느꼈기 때문이다'는 속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