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만큼이나 영화의 도입부는 도발적이다. 유하(A) 감독은 결혼식장의 전문사진기사가 독점해왔던 결혼의 이미지에서 기존의 결혼관을 뒤집어버리는 한 컷을 예리하게 찍어냈다. 결혼식장 로비에서부터 카메라는 친구, 친척, 부모 등을 커트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필름에 담는다. 비교적 긴 시간의 쇼트가 마무리되는 시점은 가족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를 향해 신혼부부가 미소를 짓고, 친척, 친구 등이 축복을 빌어 마지 않는 순간 그들의 이미지는 180도 역전된다. 망막의 맹점으로 보지 못했던 결혼의 모습이 관객의 뇌리에 기이한 형상으로 각인된다. 결혼의 영정으로 비쳤다면 신성 모독적인 발언일까?

역전된 가족사진은 맛보기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전반에 걸쳐 결혼은 극복(?)의 대상이다. 남녀의 사랑을 시종일관 징글징글하게 방해하는 악역이다. 드라마에서 결혼이란 오랜 고난과 역경을 거쳐서 도달하는 행복의 관문이다. 해피엔딩의 절대적인 권위가 결혼에 있었다. 그 권위의 토대는 결혼으로 가족이 구성된다는 사실에 있다.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필수적 기본단위로서 특히 자본주의 사회를 작동 가능케 하는 노동력을 공급하는 원천이다. 가족을 결정짓는 상징적인 제도로서 결혼, 그 권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화면의 색조, 냉소적인 대사, 마주앉은 두 사람의 공간을 싹둑 가르는 창틀로 보이지 않게 준영(감우성 분)과 연희(엄정화 분)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꺼름직한 결혼의 느낌이 독특하다.

결혼에 대한 저항의 전략으로 틀 지워진 영화의 맥락 안에서 준영과 연희는 현란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완전한 욕망을 투사하고 있어 순수해보이기까지 하는 준영의 “일생동안 한 사람에게 만족할 수 없다”, 이는 거창한 사회변혁의 의지를 완벽하게 함축하고 있는 저항조직의 강령이다. 단 2명의 조직이 발생한 토양은 제도, 관습에의 순응보다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를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문화다. 준영은 개인의 욕망을 결혼이라는 제도가 억압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제도는 억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태연하게 위장결혼의 음모를 툭툭 내뱉는 준영과 그것을 능청스레 받아넘기는 연희는 힘든 상황을 즐기는 레지스탕스다. 그래서 멋지다. 그들은 실제 부부처럼 의사신혼사림을 차리고, 의사신혼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을 속이고, 사랑을 키워간다.

드라마틱한 부분은 역시 이상과 현실이 빚어내는 갈등에서 비롯된다. 준영은 사회의 변화를 받아 안고 가는, 자신의 욕망과 삶을 일치시키는 이상주의자요 영웅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 만나야 하는 조력자인 여성과 조우하지 못하고 데릴라, 하와를 만나버렸다. 그는 순수하다. 한 사람에게 일생을 걸 수는 없지만,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하진 않는 스타일이다. 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영원한 사랑에 자신이 없고 그런 욕망을 은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연희는 현실주의자다. 경제적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어 버린다.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어” 라는 당돌한 말을 하는 그녀. 영웅은 데릴라의 손 안에서 시대적 의무와 사랑사이에서 시련을 겪는다. 삼손이 머리카락이 곱슬했던가? 준영과 불륜의 관계를 지속하는 그녀를 향한 분노를 곱슬곱슬한 라면을 먹음으로 힘차게 터뜨린다. 블레셋 민족의 신전 기둥이 무너지듯, 젓가락이 떼구르르 구르고 연희와의 관계가 파경의 위기를 맞는다.

여전히 결혼은 넓은 문이요, 절대적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끄떡없어 보인다. 현실 사회에서 결혼 연령이 늦춰지는 추세, 증가하는 이혼율, 독신자들의 모습에서 변화의 기운이 느껴지지만, 미약하다. 항아리에 물이 아구까지 차지 않았다. 다만, 영화는 이런 기운을 받아 안고 고민하며 문제제기를 하는 선에서 만족한다. 여백의 미라고 봐두자. 아직은 두고 볼 여유가 필요하다. 어쨌든 싱글남, 싱글녀에게는 좀더 감정의 파장이 클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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