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 한 번쯤 있지 않았나? (그런데 대부분 이런 경험이 없었단다. 내가 별종이란 걸 오늘 새삼 깨달았다.) 지폐에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어떠한 문구를 적어놓고 그걸 다시 받아보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나, 선물로 줄 책을 싸면서 맨 뒷장 여분 페이지(뒷 장 하드한 부분과 그 앞의 여분 페이지를 같이 싼다)에 내 전화번호나 상대방이 기뻐할 조크를 적어 놓는 일. 이는 은행 직원에 걸려, 폐기 처분 될 운명에 처할 수도, 영원히 상대방이 진실을 발견해 내지 못할 지도 모를 일이나 은근히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분명, 삶을 재미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세렌디피티>는 장난에 불과할 것 같던 이러한 쿵쿵따(놀이-글쓴이 주)를 영화에 진짜로 써먹은 기특한 작품이다. 내가 달콤히 꿈에 그리던 상상의 각본대로 영화는 대리만족을 시켜주어 더욱 반가웠다. 이 놀이를 즐겁게 포장하는 주인공 존쿠삭과 케이트베킨세일은 로맨틱 코미디의 사랑스런 남녀 역할을 아주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잘 해낸다. 또 만화경 같은 영상과 설탕같은 대사는 더없이 로맨틱하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논리정연한 인과를 따진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 수긍할 사실. 누구는 재채기한 콧물을 닦아주다가도, 또 누구는 다리 걸어서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임무는 오로지, 어떻게 해서든 관객들을 사랑의 바다에 풍덩 풍덩, 빠뜨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생명력이 오래갈 로맨틱 코메디의 건강한 균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세렌디피티>는 향후에도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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