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사냥꾼 블레이드가 돌아왔습니다. 전편에서 끝장난 줄 알았던 그의 스승이자 파트너인 위슬러도요.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그들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전편과 조금 다릅니다. 마늘도 은총알도 통하지 않으며 흡혈귀 피까지 빠는 변종 흡혈귀 리퍼지요. 흡혈귀 세계의 제왕 다마스키노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블레이드 일행은 잠시 흡혈귀들과 휴전하고 그와 싸우기 위해 훈련받은 흡혈귀 특공대 블러드 팩과 함께 프라하의 밤거리를 누비며 리퍼 사냥을 나섭니다.

제가 흥분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전 블레이드의 팬도 아니고 전편도 참 재미없게 봤으니까요. 이 영화에서 블레이드가 특별히 더 나아진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그는 무뚝뚝하고 새디스틱한 흡혈귀 사냥꾼입니다. 정말 매력 없어요.

하지만 [블레이드 2]는 여러 면에서 전편보다 나은 영화입니다. 일단 기술적인 면에서 영화는 꽤 발전했습니다. 흡혈귀들의 죽음 묘사부터 그렇습니다. 꺼져가는 석탄처럼 불꽃을 튕기며 부스러져 가는 이번 영화 속의 흡혈귀들과 전작의 컴퓨터 그래픽 해골들을 비교해보세요.

액션 장면에서도 창의적인 시도가 엿보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견자단이 무술 안무를 맡은 전통적인 와이어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 스턴트맨들을 결합시키고 있는데, 결과는 아주 새롭습니다. 소리없이 블레이드의 기지로 침투하는 흡혈귀 밀사들의 유연한 동작이나, 거미처럼 벽을 기어가는 리퍼들의 공격 같은 것들은 슬슬 원화평식 와이어 액션에 질려있을 액션 영화 팬들에게 새로운 구경거리를 제공해 줍니다.

그리고 리퍼들이 있습니다. 대머리와 창백한 피부 때문에 올록 백작의 후예처럼 보이는 리퍼들은 정말로 괜찮은 호러 영화 괴물입니다. 살을 찢어발기는 물리적 힘 때문에 무서운 게 아니라 그 반쯤은 짐승과도 같고 반쯤은 유령과도 같은 비인간적 특성 때문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길레르모 델 토로는 [블레이드 2]를 거의 완벽한 자기 영화로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컴컴한 지하 세계를 무대로 한 축축하고 조금은 서글프기까지한 드라마는 무시할 수 없는 델 토로의 개성입니다. 우린 이 영화를 쉽게 전작들과 여러가지로 연결시킬 수도 있습니다. 어두운 지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험과 인간을 흉내내는 비인간의 존재는 [미믹]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육체의 기형화에 관한 드라마는 [크로노스]에서도 있었지요. 리퍼들 덕택에 이 영화는 [블레이드]보다 [크로노스]의 속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데이빗 S. 고여의 각본이 조금만 더 따라주었다면 [블레이드 2]는 더 흥미로운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각본이 정말로 좋았다면 처음부터 [블레이드 2]라는 제목을 단 영화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어요. 이 영화에서 블레이드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거든요. 그는 나오는 장면이 가장 많고 대부분의 액션 장면에서 주역을 맡긴 하지만 정작 밑에서 벌어지는 드라마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진짜 드라마는 다마스키노스와 그의 딸 니사, 리퍼의 두목이라고 할 수 있는 노막 사이에서 벌어집니다. 영화가 거의 그리스 비극풍의 결말로 맺어질 때 블레이드가 하는 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캐릭터의 몸을 들어 옮기는 짐꾼 노릇입니다. 다시 말해 두 가지 이야기가 따로 노느라 어느 쪽에도 집중하지 못한 각본인 거죠. 그 때문에 블레이드의 캐릭터가 더 참을만해졌던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배우들은? 웨슬리 스나입스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뻣뻣합니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역시 별다른 존재감이 없고요. 하지만 블러드 팩의 리더 론 펄먼은 흥미진진한 악역 연기를 선보입니다. 역시 블러드 팩의 일원을 연기한 견자단의 비중이 작아 실망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가 이 영화의 액션 연기 전체를 책임지고 있었다는 걸 고려해보면 결코 작은 비중은 아니었죠. 참, 니사로 나오는 레오노르 바렐라의 온전한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테일러 오브 파나마]를 보신 분들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아실 거예요.

기타등등

1. 벌써 3편이 각본 작업 중이라더군요.
2. 영화 끝에 보면 '이 영화를 찍는 도중 리퍼를 다치게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자막이 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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