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병으로 3년 동안 고생하던 아이리스 머독이 1999년에 죽자, 남편인 존 베일리는 죽은 아내에 대한 여러 편의 책을 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세 편이나 되지요. [Iris: A Memoir of Iris Murdoch], [Elegy for Iris], [Iris and the Friends]...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으니 각 권의 내용이 얼마나 다른 건지 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양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어요. 반 세기 동안이나 자기 삶을 지배해왔던 아내의 거대한 그림자가 갑자기 걷혀진 뒤 그가 느꼈던 공허함은 얼마나 컸을까요? 아마 필사적으로 죽은 아내의 기억을 건져 올리는 것이야 말로 그가 제정신인 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이었는지 모릅니다.

[Iris: A Memoir of Iris Murdoch]와 [Elegy for Iris]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리처드 에어의 영화 [아이리스]는 알츠하이머병으로 고생하던 아이리스 머독의 말년과 존 베일리와 머독이 처음 만나 관계를 시작하던 젊은 시절을 번갈아가며 보여주고 있습니다. 굉장히 잔인한 이야기죠. 머독처럼 천재적인 작가가 대소변도 못가리는 반백치 상태로 추락하는 과정처럼 고약한 아이러니가 있을까요?

그러나 이 영화는 아이리스 머독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존 베일리에 대한 것입니다. 영화는 알츠하이머병을 러브 스토리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아이리스]는 한 여성의 빛나는 지성을 사랑했던 남자가 그가 그처럼 사랑했던 아내의 정신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과정을 보며 느꼈던 처절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젊은 시절과 말년은 씨실과 날실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젊은 시절은 베일리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설명하고, 현재는 그런 그가 어떤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죠. 이 둘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젊은 시절을 단순히 회상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는 네 명의 훌륭한 배우들에 의해 지탱됩니다. 머독 역의 주디 덴치와 케이트 윈슬렛은 결코 쉽게 연결되는 배우들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그 때문에 영화의 비극성이 더 두드러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볼품없는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을 한 이 두 배우들이 극단적인 환희와 몰락의 두 끝에 서서 창조해내는 이미지는 처절하지만 굉장히 아름답기도 합니다.

베일리 역의 휴 본빌과 짐 브로드벤트는 눈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하나의 캐릭터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짐 브로드벤트는 실질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그가 보여주는 아내에 대한 헌신과 고통은 너무 진솔해서 눈이 아플 지경입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즌의 가장 훌륭한 연기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아이리스]는 투박하고 단순한 신파극입니다. 20세기 영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치고는 너무 단순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아이리스]의 거친 연가에는 이런 단순한 신파극이 가진 강한 힘이 있습니다. 이 영화로 아이리스 머독이라는 작가에 대해 뭔가 그럴싸한 지식을 얻지는 못하겠지만 (그럴 계획이라면 그냥 머독의 책을 읽으세요. 번역도 많이 되어 있으니까요) 실존 인물에 대한 영화가 대상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해주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적어도 [아이리스]의 진짜 기능은 다른 데 있습니다.

기타등등

머독과 베일리가 만난 게 30대 중반이니까 케이트 윈슬렛의 머독은 실제 머독보다 젊은 편이지요. 그 때문에 시간의 혼란을 일으킨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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