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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콜린스 (1996, Michael Collins)
미국, 영국 / 영어 / 드라마, 역사 / 132분 15세관람가 /


출연: 리암 니슨, 줄리아 로버츠
감독: 닐 조단
각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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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IRA의 창시자 마이클 콜린스의 이야기를 그린 전기 영화. <크라잉 게임> 등으로 아일랜드 영화를 전세계에 알린 닐 조단 감독의 작품으로 흥미로운 이야기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재현한 스케일 큰 화면이 일품이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영화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며, 특히 전작품 <크라잉 게임>에서 아일랜드 해방군 IRA를 고정적으로 그렸다는 자책감 때문에 닐 조단 감독이 이 작품에선 자신의 조국인 마이클 콜린스를 영웅적으로 그렸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마이클 콜린스의 이름은 아일랜드의 역사책에서 삭제될 만큼 여전히 아일랜드 역사에서 논란의 대상으로 남아 있으며 그의 고향에 있는 푯말은 세워지는 족족 파손될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닐 조단은 10년 이상이나 그의 드라마를 영화로 만들어 보려고 했을 만큼, 그의 인생을 배우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겐 매력의 대상이다. 닐 조단은 <마이클 콜린스>의 대본을 13년전에 처음 썼으며, 그후 얼마 뒤 첫 감독작인 <엔젤>을 연출한 이후 매번 새 작품을 마칠 때마다 이 영화의 제작을 마음먹었다고 한다. 한때 닐 조단 감독은 제작자인 스태픈 울리와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같이 살면서 매일 서너 페이지의 원고를 쓰곤 했던 적이 있었다. 조단 감독은 대본을 써감에 따라 점점 더 콜린스에 관해 깊이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이클 콜린스> 프로젝트가 빛을 보게 되기까진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제작자 데이비드 게펜이 닐 조단, 스태픈 울리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촬영을 마친 이후 <마이클 콜린스> 프로젝트가 다시 화제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자신감을 갖지 못했었는데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흥행 대성공을 이룩하자 제작에 참여했던 세 사람은 <마이클 콜린스> 제작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조단에 따르면 13년전에 처음 썼던 대본과 비교해볼 때 <마이클 콜린스> 대본은 달라진 곳이 별로 없다고 한다.

조단 감독은 처음부터 마이클 콜린스 배역에 리암 니슨을 점찍어 두고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초부터 아일랜드인의 극영화 제작의 평판은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닐 조단의 <크라잉 게임> 및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성공과 <쉰들러 리스트>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됐던 리암 니슨의 연기는 두 사람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리암 니슨은 마이클 콜린스 역을 맡으면서 캐릭터 연구를 위해 나름대로 마이클 콜린스를 연구했다. 키티 키어난 배역에 줄리아 로버츠가 관심을 보이기까지 제작진은 몇몇 연기자들을 대상으로 캐스팅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에이단 퀸은 처음엔 이 작품이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지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한다. 그러나 그가 아일랜드 역사에 관해 전혀 모르는 미국인 친구들에게 대본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에이몬 드 발레라 배역엔 알란 릭맨이 캐스팅됐다. 에이몬 드 발레라는 미국에서 태어난 아일랜드인이었으며 콜린스의 정신적인 스승이었다가 런던 협약을 계기로 적대 관계가 되었으며 1932년, 아일랜드 자유국가의 수상이 됐으며 1937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정부인 아일랜드 공화국 헌법을 제정한 정치인이다. 그러나 에이몬 드 발레라도 북아일랜드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에이몬 드 발레라는 마이클 콜린스의 포용력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1966년, 에이몬 드 발레라는 이렇게 후회했다. "역사는 마이클 콜린스가 위대했으며 나의 식견이 짧았음을 기록할 것이다."

콜린스는 현대사의 격동기에 쓰러진 가장 비극적인, 그러나 진실한 영웅이었다. 그의 용맹스런 투쟁이 있었기에 오늘날 아일랜드 공화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굽힐줄 모랐던 불굴의 의지와 확신은 그가 가장 가까이 했던 동지들의 손에 의해 역사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중국의 모택동과 이스라엘의 샤미르가 그의 게릴라 전술을 교본으로 삼을 정도였으며, 이스라엘의 독립 전쟁 기간 중 샤미르는 자신의 암호명을 '미카일'이라고 정할 만큼 마이클 콜린스에 대한 존경은 특별한 것이었다.



"19세기 말 대영제국은 세계의 3분의 2가 넘는 영토를 장악했다. 그러나 이 막강한 영국에게 가장 큰 골치거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일랜드였다. 700년 동안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에 반란과 혁명으로 저항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그후 1916년에 시작된 반란은 게릴라 전으로 계속돼 통치의 본질을 바꿔 놓았다. 이 전쟁의 배후 지도자는 마이클 콜린스였다. 그의 생과 사는 승리와 공포와 비극으로 점철되었다. 이것은 그의 이야기이다."
12세기 이래로 영국의 정복자들은 철권으로 아일랜드를 통치하며 아일랜드 국민들에게 신교를 강요하고 대영 제국에 충성하도록 만들었다.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들은 굶어 죽어가면서도 영국인의 배를 채워주기 위하여 영국에 육류와 버터와 우유를 바쳐야했다. 1916년 더블린 부활절 항거 아일랜드 독립군은 6개월간의 항쟁 끝에 영국군에 무릎을 꿇는다. 지도자급 주동자들은 모두 처형된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던 에이몬 드 발레라(Eamon De Valera: 알란 릭맨 분)와 행동대원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 리암 니슨 분), 그리고 해리 볼란드(Harry Boland: 에이단 퀸 분)는 투옥된다. 출옥 후 마이클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카리스마적인 연설과 호소로 세력을 규합한다. 해리는 마이클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마이클은 발레라를 의장으로 하는 신페인당의 정보담당 장관으로 활약한다. 마이클과 해리는 부상을 치료해준 키티(Kitty Kiernan: 줄리아 로버츠 분)에게 동시에 마음을 뺏긴다. 마이클의 신출귀몰한 활약은 계속된다. 발레라의 탈옥을 계획하고 지하정보망을 구축하는가 하면 영국의 앞잡이로 암약하는 아일랜드인 형사들을 하나씩 처단해버린다. 수세에 몰린 영국 정부는 무차별 투옥과 테러로 응수한다. 국제적인 지지를 호소하고 상황을 호전시키려는 의도로 발레라는 해리를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다. 해리가 떠난 사이 마이클과 키티는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미국에서 돌아온 발레라는 마이클로부터 작전권을 회수하지만 이미 대세는 아일랜드 독립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 있었다. 영국은 마침내 평화를 선포하고 협상을 요구한다. 마이클은 자신이 게릴라 전사이지 정치가가 아니라며 협상 대표자로 선정된 걸 거부하지만 발레라는 그를 런던으로 보낸다. 마이클은 아일랜드를 사실상 분할하는 공화국 수립을 약속한 런던협약을 가지고 돌아온다. 비난이 쏟아지지만 아일랜드 의회는 근소한 표차로 협약을 비준한다. 그러나 완전 독립을 주창하는 발레라는 지지자들과 해리를 이끌고 의회를 탈퇴해버린다. 평화를 위한 콜린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런던 협약을 찬성하는 콜린스 지지파와 협약을 반대하는 발레라 지지파간에는 내전이 터지고, 콜린스는 협약을 맺기 이전의 많은 동지들에게서까지 변절자란 지탄을 받는다. 아일랜드 거리에선 동포간의 전쟁이 터지고 평화의 기운은 사그러지고 있었다. 발레라와 평화적 대화를 희망한 콜린스는 그의 게릴라 아지트를 향해 떠난다. 그러나 마이클의 제거를 노리는 발레라의 젊은 지지자들이 계곡에 은닉해 있다가 마이클을 사살한다. 1926년 발레라는 마침내 협약을 받아들이고 아일랜드의 수상을 거쳐 초대 대통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