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리뷰나 비평에서 잊고 있는 아니 다루지 않는 그 휴머니즘이라는 것의 본질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영화의 절정에서 나타나는 이념적 공포의 폭력적 표출은 휴머니즘의 예정된 붕괴가 아니었을까?
여기에서 폭력이란 것.. 그것은 일종의 고독의 문제이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독과 불안의 신이, 흙의 신에게 흙을 빌려 인간의 형체를 빚어 만들었다. 이어 영혼의 신에게 가 인간의 형체에 살아있는 영혼을 불어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현재의 인간과 같은 완벽한 인간이 탄생하였다. 그러자 세 신이 서로 완성된 인간을 차지하고자 다툼이 벌어졌다. 그래서 제우스신은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인간이 죽으면 그 재료였던 흙은 흙의 신이 가져가고, 영혼은 영혼의 신의 소유로 환원된다고.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은 고독과 불안의 신의 소유라고 명하였다. 그 때부터 인간은 살아가는 평생동안 고독과 불안에 싸여 지내게 된 것이다.
군대... 외부와 격리되어 있는 또 다른 세계.... 긴장감과 고독 그것을 잊기 위한 몸부림의 비극이다.
누구나 불안감과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분의 문제이다.
그런 불안과 고독이 인간의 저편에 숨어있기에 우리는 살아가는 지 모른다. 그것을 잊기 위하여 혹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 영화에서 남한 병사들이나 북한 병사들이나 그들의 고독을 넘어서기 위하여 그리고 불안을 잊기 위하여 끝이 보이는 게임(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불장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 끝은 잔인하게도 게임을 끝내려고 할 때 찾아온다.
이 영화의 상징적 장치들은 쉴새없이 튀어나와 절정으로 치닫는 감정을 북돋아 준다. 지뢰밭사건, 이등병의 편지, 쵸코 파이, 구두약, 총알 공기놀이, 닭싸움 ... 이런 금지되어야 하는 사건들은 우리에게 이데올로기를 앞서는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휴머니즘의 저 밑에는 고독이라는 순수한 인간 본성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절정에서의 총성이 그것이다. 즉 누가 누구를 쏘았고 누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그것은 그들이 송강호의 말대로 총을 내리지 않고 총을 겨눈 순간, 그 때부터 그들 모두 그들의 고독을 믿기 시작했으며 불안 표출의 방편으로 폭력을 아니 총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예정된 수순을 밟아 그들은 죽음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고독의 불안감에 휘말리지 않은 송강호 만이 이 영화의 마지막까지 담배를 태운다. JSA라는 시대사적 공간적 위치가 우리에게 팽팽한 긴장감으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그것을 깨뜨린 것은 휴머니즘이 아닌 고독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생존자인 이수혁 병장은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자기를 살게 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보지만 진실 앞에 소용이 없음을 깨닫는다. 고독에서 나와서 극복할 길 없는 고독을 가지고 고독한 다른 사람들 한 가운데서 자기 혼자만의 궁극적인 비극의 고독을 향해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삶이란, 삶과 죽음이 뒤섞인 고통의 연장이라고 느낄 때에만 죽음은 이해되듯이 이수혁 병장은 그렇게 죽어갔던 것이다.
그렇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우리의 또 다른 일상을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나 외로웠던 사병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이데올로기라는 덫 속에서 폭력이라는 장치를 가질 수밖에 없는 분단의 현실...

이 영화는 나에게 나를 사랑하는 법과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말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