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부는 좋았다. 박상민의 카리스마, 김석훈의 후까시도 봐줄 만했다. 특히 배두나와 김석훈의 러브씬이 모던하게 처리되어 좋았다. 한국 시장 특성상 액션+로맨스 공식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할 때, 90년대 왕가위식 분위기는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오히려 '신선'했다.

문제는 후반부다. 한 마디로 내용 전달이 안된다. 그러니 관객들은 분위기 파악하느라고 바쁘다. 여러 차례 위기 상황이 다가오는데 도대체 어떻게 처리가 된 것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뭐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이 없다. 위기가 해결되면 곧바로 다음 위기가 찾아온다. 숨 돌릴 틈도 없다. 내러티브의 문제라기보다 연출과 편집의 문제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다리가 끊어져 모두 추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급박한 상황이다. 해결책으로 열차를 분리하자는 안이 나왔다. 영화는 아주 교과서적으로 서스펜스를 부각시키고 있다. 교량 구간에 다가서는 열차와 열차를 분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을 번갈아 보여주는 식이다.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마침내 열차가 분리된다. 동시에 상황실에서 "우와!" 하는 환호성이 들린다. 벌써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인가? 뭐가 어떻게 됐길래 그렇게 순식간에 위기가 해소되는가? 서스펜스를 강화하기 위해 열차가 다리를 다 건너는 것을 보여준 후에 탄성을 질러도 늦지 않다. 이렇게 <튜브>는 상황을 너무 빨리 전개시킨다. 한 템포 늦춰서 상황을 정리해야할 시점을 생략해버리고 영화를 다음 시퀀스로 이동시킨다. 하지만, 스피드 영화의 속도감이란 무조건 생략한다고 따라붙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시퀀스는 이 영화에 더 있다. 두 열차가 충돌하려는 것을 선로를 바꿔 해결하는 상황이나 김석훈의 자살결심 부분도 마찬가지다. 뭔가 비장미가 넘쳐흘러야 하는 장면에서 별다른 느낌이 없다. 관객이 깊게 동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참 좋은 소재, 참 좋은 기술은 있었지만, 정작 드라마가 없고 극적 구성이 안되어 있다.

두번째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드라마로 승부를 보려고 했었다는 데에 있다. 지하철 액션이라는 훌륭한 소재를 갖고 있었고 멋진 액션을 두루 선보이기도 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러브 스토리로 직행하려 한다. 큰 패착이다. <쉬리>의 러브 스토리는 액션 스케일을 버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클라이막스를 장식했기에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튜브>에서는 둘다 너무 밋밋해졌다. 날카로운 액션 장면은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사운드까지 제거하면서 힘을 잃었고, 감각적이던 로맨스는 스스로를 왜 희생해야하는지 알지 못하는 김석훈과 그를 짝사랑하던 배두나를 억지로 떼어놓으며 이해할 수 없는 극단까지 치닫는다.

전반적으로 <튜브>는 참 아쉬운 영화다. 물론 대충 보기에 나름대로 볼거리도 많고 화면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관객의 눈높이가 너무 높아진 탓일까? 김석훈이 열차로 뛰어오르는 장면을 카메라는 왜 뒤에서 잡지 못하고 굳이 커트를 분리시켜 열차 안에서 잡았어야 하는지, 김석훈이 열차 천장으로 뛰어내릴 때 왜 <미션 임파서블> 만큼의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지, 권오중의 수갑은 왜 갑자기 풀려져 있는지, 지하철 안에 갇힌 승객들은 왜 다들 침착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지, 마지막 장면에서 왜 그 방법 밖에 없는지를 더 감동적으로 설명하지 않는지 궁금하고 또 무척 아쉽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하자면,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악몽일 것이다. 아무리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저 안에서 희생당했던 사람 중에 나의 가장 친한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마땅히 이 영화는 그분들에게 좀더 예의를 표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영화의 첫 부분에 "이 영화는 대구 지하철 참사와 관련이 없고 참사로 숨진 고인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는 정도의 자막을 넣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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