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여자친구와 함께 이 영화의 제작발표회를 보러 충북 진천에 마련된 세트장에 간 적이 있다. 기쁨을 줄 데이트가 될 것으로 꿈꿔 마련한 자리였는데 그녀는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김석훈이랑 배두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구 떨렸는데, 그녀는 연예인에 환장하거나 하는 여자는 아니었던 것.

생각해오던 것과는 다른 차분한 제작발표회가 있었고, 점심으로는 뷔페가 마련되었다. 난 배두나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어 영화에는 큰 관심을 두지 못했다. 실제 제작했다는 두 량의 전철을 보고는 잠시 놀랐을 뿐.

그런 후 1년 뒤, 같이가 아닌 혼자가 되어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저 전철이 저렇게 변신했네, 와 정말 훌륭하지 않아? 묻고 싶었지만 내 옆자린 무심하게도 비어 있었다.

그러나 <튜브>의 오프닝은 처져있던 축축한 기분을 순식간에 증발시켜버렸다. <쉬리>의 도심총격전을 연상시키지만 더 화려해지고 긴박감 넘치는 그 도심공항터미널 총격씬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꿀꺽' 높였다. 이후 통제불능의 지하철에서 펼쳐지는 최선의 장면들은 <튜브>가 올 여름영화시장에서 확실히 살아남을 가능성이 가장 큰 메이드 인 코리아 작품임을 보여준다.

<쉬리>의 액션과 <스피드>의 긴장감을 고루 갖춘 이 영화는 <쉬리>의 조감독 출신인 백운학 감독이 연출해 대중적 재미를 무엇보다 갖추었다. 여기에 소름끼치는 박상민의 악역 연기(<장군의 아들> 이후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호연. 그가 '홍길동' 김석훈과 펼치는 세기의 대결은 패러디가 예견되는 명승부다.)와 김석훈의 마일드한 터프함, 이제는 흥행배우라고 소문내고 싶은 배두나의 명연기가 더해져 작품의 완성도가 더욱 탄탄해졌다. 이외에 중앙통제 실장역을 맡아 마치 홍명보처럼 전체를 꿰뚫어 보고 지휘하는 손병호, "도준아, 니가 윤봉길이냐. 안중근이냐! 그만둬."식의 대사로 긴장을 이완시키는 책임을 맡은 임현식(지하철 수사대 반장역)의 연기는 <튜브>가 긴장과 동시에 웃음도 유발하는 즐길만한 대중오락영화 노선을 걷고 있음을 드러낸다. 악역도 멋진 경찰서장역의 기주봉과 또라이 깡패역도 나이쓰한 면도날역의 권오중의 역할도 긴장과 이완 작용을 하며 영화에 기여한다.

한편 도시철도공사의 지원(김포도심공항터미널과 도시철도공사의 적극적인 장소 협조는 영화의 질과 운명을 바꿔놓았다. <와일드 카드>에 비협조한 마사회는 땅을 쳐라!)로 가능했던 지하철 시퀀스는 흥미로운 지하철 공간 체험과 체감도 높은 공포감을 더해준다.

하지만 지하철은 살아있지만 그 안 인물(시민)들의 존재감이 약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 지하철을 타는 주체가 관객들임을 상기할 때 그 비주인공을 좀 더 살렸어야 했다. 만일 그랬다면 체감 공포와 감점이입은 더더욱 커졌을 것이다. 한편 후반부 도준의 괴력점프와 리모컨점프(다행히 모니터 시사 후 편집되었다고 한다) 같은 뜬금 없는 만화적 표현은 쌓아놓은 탑을 흔들어댄다. 또 지하철 역사 폭파씬과 같은 여전히 조악한 한국특수효과의 현실을 드러내는 장면은 웬만하면 들어냈으면 싶은 장면이다. 도준과 인경의 사랑에도 좀 더 설명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다행히 <튜브>는 선배의 작품을 적극 참고하면서도 감각이 다른 연출로 기존 액션영화와는 다른 쿨한 향기를 품고 있다. 또 <매트릭스 2 리로디드>가 영화적 필요에 의해 도로를 직접 건설했듯이, 지하철을 만들어 찍음으로써 <튜브>는 이제까지 한국에서 맛보지 못한 살아있는 지하철 액션영화를 선보였다. 만일 백운학 감독에게 제작비의 자유가 더 주어졌다면 아마 그는 제리 브룩하이머도 군침 흘릴 작품을 탄생시켰을지도 모른다. [★★★]

*본 영화평은 모니터 시사회를 보고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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