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다'라는 말의 의미...

이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사전에는 어떻게 나와있을지 궁금해 사전을 한번 찾아봤더니...

1) (도덕, 윤리에서 벗어나) 옳지 않다. 악하다. 2) (됨됨이나 품질따위가) 좋지 않다. 3) 해롭다.

뭐, 이런 뜻이더군요. ^^;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나쁜'의 의미는 이런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조금은 다른 뜻이겠죠?

자! 그럼 이 영화에서는 이 '나쁜'이란 말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알아볼까요?

영화는 사람들이 많은... 살아 움직이는 거리의 모습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 속에서 한 여자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고, 그 뒤로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은 옷의 한 남자가 보입니다.

강인한 인상과 검은 옷...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한 눈에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이 사람... 그가 이 영화의 주인공 '나쁜 남자' 한기 (조재현)입니다.

그는 길을 걷다 우연히 한 여자를 발견합니다.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의 여자... 선화 (서원)... 한기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첫눈에 반하고 그녀에게 다가갑니다.

하지만, 그녀는 남들과 다른 모습의 그를 보고 피합니다. 곧 이어 그녀의 남자 친구가 그녀를 찾아옵니다.

다정한 연인의 모습을 보고 돌아가려는 한기...

하지만 그는 그냥 돌아가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가 기습적으로 키스를 합니다.

놀란 그녀와 그녀의 남자 친구... 그녀의 남자 친구는 급한 마음에 옆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그를 내려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도와줘서 간신히 그를 때어내고, 선화는 그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그는 사과를 하지 않습니다.

선화는 그런 그에게 침을 뱉고 지독한 멸시를 보냅니다.

선화의 이 행동... 아니, 이 남자 한기를 만났다는 것만으로 그녀의 운명은 180도 뒤바뀝니다.

한기가 계략을 써서 밝은 빛의 세계에 있던 그녀를 자신이 있는 어둠 속 사창가로 끌고 내려와 버렸던 것입니다.

한기는 그렇게 밝은 모습의 선화가 차츰차츰 어둠에 젖어 창녀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녀의 방 속 거울을 통해 지켜봅니다.

그녀의 방에 걸린 거울... 그 뒤에는 밀실이 있어 밖인 선화의 방에서 안을 볼 수는 없지만, 안에서는 밖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기는 그 거울을 통해 그녀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가만히... 가만히...

그러던 중 그녀가 도망가는 사건이 발생하고, 한기는 그녀를 뒤쫓아가 붙잡아 옵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없이 어느 한적한 바닷가로 그녀를 데리고 갑니다.

선화는 그 곳에서 한 여자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선화는 그 곳에서 갈기갈기 찢겨진 두 장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돌아오고 나서 계속된 사창가의 생활...

그녀는 어느새 노련한 창녀가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의 방에는 그 해변가에서 줏어온 사진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진 상태로 거울에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중요한 그 사진 속 인물들의 얼굴만 없습니다.

선화와 한기... 둘은 그 사진 속 인물들을 자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 속의 남녀... 그들은 누구일까요?

처음에 선화는 자신을 이런 창녀로 만든 그를 미워했지만, 자신을 배려해 주는 한기의 모습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갑니다.

그 와중에 한기는 살인죄를 쓰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선화는 곧 죽을 그를 찾아가 죽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혼자 편하게 죽지 말라고...

얼마 후, 한기는 죄가 없음이 밝혀져 출감하게 되고... 그와중에 그는 선화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하지만 그녀는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찾았던 예전 그 해변가에서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고, 함께 정처없이 떠돕니다.

이 영화는 참으로 독특한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사랑이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

이 영화에서 한기는 선화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선화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행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한 남자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창녀가 되어야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한기는 정말 그녀를 사랑했을까요?

한기 역시 남자기에 여자와 섹스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선화와는 섹스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에게 그녀는 사랑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을까요?

자신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밝고 예쁜 그녀의 모습에서...

아니면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랑과는 또 다른 사랑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은 처음에는 서로를 존중하며 시작됩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사랑은 서로에 대한 소유욕으로 변질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 소유보다는 그냥 그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하는 우정에 가까운 사랑...

그것이 그가 원했던 것이 아닐까요?

한가지 더 덧붙인다면... 그녀의 모습에서 한기는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한기가 진짜로 좋아했던 한 여인의 모습을...

해변가에서 목격한 한 여자의 죽음... 그것은 한기가 좋아했던 첫사랑의 여인이 아니었을까요?

과거에 죽은...

그래서 그는 첫눈에 선화에게 반했고, 그녀를 도망치지 못하게 붙들어두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엉뚱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 이 영화에서 영화를 이해하는 주요한 매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유리'입니다. 또는 '거울'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

우리는 '유리'를 통해 내 모습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단지 볼 수 있을 뿐이지, 그 안에서 보여지는 것들은 실체가 아닙니다.

일종의 환상이라고 할까요?

한기는 그 유리를 통해 선화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선화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거울에 비친 한기의 모습을 통해 거울 뒤편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거울을 깹니다.

거울... 즉, 유리는 선화와 한기 사이의 일종의 벽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것이 신분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떤 장벽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

아무튼 그것이 깨짐으로 선화는 한기를 받아들인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유리가 깨어졌다고 해서 그들의 운명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의 길을 걷습니다.

걷다 보면 구부러진 길이나, 자갈밭길, 가시밭길 등등 실로 다양한 길들을 만나게 됩니다.

늘 순탄치만은 않은 게 인생인 것입니다.

마치 유리가 깨어지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 한기는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유리를 깹니다. 그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을 암시하듯이...

그리고 깨어진 유리는 사람을 죽이는 흉기로 까지 등장합니다.

깨어진 유리... 그 날카로움은 한 사람의 운명을 망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깨어진 유리... 즉, 한기로 인해 선화의 운명이 달라졌듯이...

어쩌면 선화는 한기와 이어진 자신의 방 속 거울을 깨면서 한기와의 만남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를 만남으로 그녀 자신의 삶이 이렇게 뒤바뀌게 되는 것이 신께서 정하신 그녀의 운명이란 것을...

이 영화는 아시다시피 상당히 독특한 영화입니다.

김기덕이란 사람... 그 사람의 영화는 상당히 파격적이고 또 독특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그 사람의 7번째 영화로 자신의 기존 영화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름대로 돈을 들여 세트를 제작하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세트 외에는 별반 볼 게 없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한기 역의 조재현... 이 사람의 연기 하나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이 사람을 실제 모습보다 과소평가 받는 배우라고 누가 그랬던가요?

이 영화에서... 그는 우리나라 영화계를 이끌어나갈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 있었습니다.

대사가 단 한마디뿐 임에도 그는 영화 속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줍니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도 '조재현'이란 배우의 이름 석자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단 한마디 대사... "깡패새끼가 무슨 사랑이야. 사랑이..."

이 대사 한마디의 파장도 상당했습니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보여준 그의 강인한 이미지와 카리스마는 대단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의 연기를 뒷받침해 줄만한 배우가 없었다는 것... 이 영화는 그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밖에 없었습니다.

여주인공 선화 역의 서원... 그녀 역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신인배우치고는 말입니다.

영화 속에서 그녀의 연기 실력이 차츰 차츰 늘어나는 게 보이더군요.

이 영화에서 '조재현'이란 배우의 그늘에 가렸지만 앞으로 기대해도 좋을 배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참! 이 영화에서의 '나쁜'의 의미... 찾으셨나요?

솔직히 이 영화에서 '나쁜'의 의미는 한마디로 요약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매우 다양한 해석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찾아보시기를... 찾으셨다면 그것이 정답입니다. 영화란 관객을 위해 있는 것이기에... ^^

늘 화제를 뿌리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겠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사랑의 유형을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한번쯤 보셔도 좋을 영화입니다.

단지, 연인들끼리 보시는 것은 좀 삼가하셔야 할 듯... ^^


P.S > 이 영화에서 제가 찾은 옥의 티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얼핏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

영화 속에서 조재현이 타고 다니는 차의 번호판은 3274였습니다.

하지만, 단 한장면에서 차의 번호가 바뀌더군요. ^^;

그 장면이 어디냐하면, 선화가 도망친 것을 알고 쫓아간 한기가 그녀를 잡아 차에 태우고 해변가로 가는 장면... 한번 유심히 보시기를... 아마 번호판이 7272였던 것 같은데...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으니 한번 확인해 보시기를... ^^






( 2002. 01. 04. 오후 8시 50분, 시네하우스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