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는 한 남자의 꿈으로 시작한다. 벤치에 앉은 한 순수한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끌리는 한 남자의 꿈으로 시작한다. 조재현은 이것이 운명적인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운명적이라고 하기에 이 영화는 너무 현실적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위험하다.

김기덕(A)의 영화는 어딘가 어설프다. 그러면서도 강렬하다. 늘 그런 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아닌 것 같은데 하다가도 결국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영화가 끝난다. 또 한편으로는 상투적이다. 뻔한 클리셰들을 사용하면서도 여전히 독창성은 잃지 않는다. 참으로 이상한 매력이다.

<나쁜 남자>는 위험하다. 비단 '강간'이라는 소재가 영화 속에 직접적으로 등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남자의 욕심이 한 여자를 타락시키고 하향평준화시켜 결국 사랑으로까지 승화될 수 있다는 냉철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영화의 종반부로 치닫으면서 첫 장면과 같은 벤치에 서원(A)이 다시 앉게 되면 그녀는 이미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남자친구와 즐겁게 쇼핑을 하던 그녀의 발랄한 여대생 이미지는 여러 남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쳐간 창녀 이미지로 바뀌어져 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위험하면서도 놀랍다. 김기덕이 가진 재능이 있다면, 이러한 놀라운 장면을 천연덕스럽게 삽입할 수 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기덕은 영화를 여기에서 끝내지 않는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얻기 위한 과정이 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어촌에서 어부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고, 이러한 이미지들이 Etta Scolla가 노래하는 'l tuoi fiori'의 바다냄새나는 멜로디와 어울려 시적인 영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우리에게 인생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이 담긴 화면은 너무 아름다워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는 김기덕 영화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나쁜 남자>는 너무 위험하다. 우선, 여성을 타락시키는 남자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위험하고, 이러한 위험한 메시지를 철학으로 둔갑시키는 행위는 영화적으로도 위험하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단지 위험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서 나쁜 영화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조재현이 나쁜 남자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가 그녀에 대해 보여준 사랑과 그의 삶의 방식은 그가 가지고 있는 나쁜 남자의 이미지와는 별개의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여서 이 영화의 위험한 부분과 그 반대편에 존재하는 참을 수 없는 매력은 다르다. 그것이 바로 김기덕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서 성공할 수 있는 이유이다.

PS. <섬>에서 다방 종업원으로 등장했던 서원의 두 가지 컬러의 연기는 제법 괜찮았다. 그리고, 그녀를 타락시키는 남자는 물론 조재현이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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