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A) 영화에 대한 논쟁을 다시금 불을 지피는 것은 아무래도 반김기덕을 자처하고 나서는 심영섭을 중심으로 하는 씨네 21쪽일 것이다. 가장 진보적인 일간지(한계레)에서 펴낸 가장 상업적인 영화잡지(씨네21)에 대한 비판이 더 많아진 지금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씨네 21의 영향력은 어떠한 타 영화잡지와는 견줄 수도 없는 막강한 것이 되었다. 그런 잡지에서 지속적으로 '나쁜 남자'영화를 공론화시키는 것은 김기덕의 7번째 영화인 '나쁜남자'에 대한 논쟁이 그만큼 관심을 끌만한 소재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뭔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는 논쟁의 형태를 보고 있다. 우리는 김기덕 감독을 찬반하는 논쟁의 장에서 과연 '나쁜 남자'를 온당하게 분석한 작품 자체를 두고 논하고 있는지 의심해봐야한다. '나쁜 남자'를 통한 논쟁이라면 더욱더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1. 베일듯 얇은 이미지 세계

김기덕 영화에서 빼놓지 않고 논하는 것이 화면구성(미장셴)에 관한 이야기이다. 감독 자신이 미술과 연분이 있는 터라 그의 영화 전체는 한편의 풍경화를 그리듯 근경, 중경, 원경의 차분한 구성을 따르고 있다. 나쁜남자에서는 선화(서원(A) 분)에게 제 갈길로 내려주는 고속도로장면에서 아주 공식적으로 드러난다. 길이는 짧지만 표지판과 도로, 인물들이 배치되는 화면은 꽉차게 쓰이면서도 결코 원근법과 배치를 잃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의 화면은 스케치북과 같다.

이러한 친숙한 화면구성과 구도는 얼마 되지 않아서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그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미지, 그것은 바로 '칼'이다. 평평한 구도의 화면, 안정감있는 화면구성은 주인공이나 주인공에 대칭점에 놓인 인물들의 '폭력'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한기(조재현 분)가 이전 두목이 돌아온 상황에서 싸움을 벌일때 쓴 나이트 클럽 포스터는 잘접힌채 목을 따는 칼로 변해버린다. 이런 칼의 이미지는 매우 연약함과 동시에 히스테리를 상징한다 할 수 있다. 칼과 유리, 날카로운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은 김기덕 영화에서 늘 등장한다. '섬'에서는 낚시바늘과 송곳으로, '실제상황'에서는 연필과 전정가위로 등장하는 이 날카로움은 부조리하고 불리하게 놓인 현실을 말그대로 '단칼'에 찔러버린다.

이런 공격적인 상징으로 인해서 영화전편에는 이질감, 불안함이 제거되지 않는다. 단아한 화면구성, 화면구도와 날카로운 칼. 이것이 김기덕이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거대한 두 축이다.

2. 창녀와 깡패

남자 주인공 한기는 사창가에 인력을 제공하고 관리하면서 돈을 받아먹는 소위 기둥서방이다. 그러나 여기서 실제 사창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한기의 역할은 일종의 경비원처럼 보여지고만 있다. 이런 비현실적인 면이 리얼리티를 떨어트리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점, 그점까지 양보하자. 그렇지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영화의 마지막 말미에 놓인 '여자친구 등쳐먹고 사는' 일이다. 유랑매춘이라는 정말 상상하기 힘든 형태의 관계로 여자 주인공인 선화와 한기는 공동체를 만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감독 김기덕은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지탄을 받는다. 그렇지만 김기덕 감독의 세계가 그렇게 허무맹랑한 세계는 아니다. 감독은 나름대로 캐릭터들에게 자신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당위를 부여한다.

그것은 바로 선화로 대표되는 여대생이 상징하고 있는 일정량의 지적인 도도함, 우월감, 사회적 인정, 도덕적 순결이라는 목록들을 다 벗겨냈을때 인간 '선화'에게 남을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김기덕은 말그대로 자연인 선화에게 '욕망'만 남긴다. 서양미술을 전공하는 선화는 김기덕 자신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번듯한 남친이 있고 이쁘게 연애를 하지만, 인상도 험악한데다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는 듯 무례한 한기에게는 매우 냉정하다. '실제상황'에서의 주인공 여자친구 역시 이러한 점에서 그와 매우 닮았다. 그는 매우 처절하게 한기의 자존심을 짓밟는다. 물론 한기의 폭력이 먼저였다는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기의 느닷없는 키스는 해병대와 집단폭행에 가담한 대중들이 상징하는 사회적 억압기구에 비하면 너무나도 미약한 폭력이다. (적어도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이런 선화에게 복수심을 품고 다가선 한기가 바라본 선화의 모습, 그것은 바로 탐욕과 위법으로 가득찬 모습이다. 여기서 단지 책장을 찢고 떨어진 지갑을 주운 것이 뭐 그리 죄가 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김기덕의 세계에서 죄의 경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점에서 거의 강박에 가까운 극단적인 선택을 늘 관객들에게 강요한다. 그는 창녀가 되던가 성녀가 되던가, 양자간의 선택만을 들이밀고 강요한다. 이러한 모습은 때로는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극중 한기가 술에 취해 선화의 침실에서 자는 장면이나 선화를 처음 범한 손님을 뒷골목에서 패는 장면 등에서 이러한 극단적인 감독의 도덕관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극단의 도덕관이 마지막 결론부의 한기와 선화의 결정을 풀어줄 약간의 실마리로 작용한다. 한기와 선화의 유랑은 어찌보면 밀교에서의 득도과정과 비슷하달 수 있다. 섹스를 초월한 채로의 관계, 육체적 방탕을 통한 초월의지, 말을 그럴싸하게 붙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3. 환타지와 현실

나쁜남자는 단지 지금껏 지속적으로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하고 있는 감독의 염세적인 세계관을 대변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세계는 어떠한 지양을 보인다기 보다는 병치된 채로 병들어 있는 세계다. 여기서는 성녀 아니면 창녀만 존재하고 깡패 아니면 미술학도만 존재한다. 그 중간의 세계는 단지 위선일 뿐 어떠한 의미도 기능도 가지질 못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세계관은 화해와 합일의 성격을 지녔다기보다는 단지 병치되어 있는채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라는 것, 그것의 가장 극대화된 형태인 사랑이라는 것 역시도 폭력이라는 형태의 정보전달로만 등장한다. 신체훼손과 강간은 그래서 그의 세계관에서 필수적이다. 칼과 같은 히스테릭하고 불안하며 위험스런 매개체의 잦은 등장도 당연하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성의 부여이다. 전작들과 다르게 나쁜남자에서는 이상스런 상징이 하나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사진'이다. 사진은 현실세계에 있어서 하나의 증명, 논증과 같은 존재이다. 한기는 빨간 옷을 입었지만 선화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과 연인관계였다. 그것이 환타지였을지도 모르며, 관객들을 위해서 선화와의 관계에 당위를 부여하기 위한 부연설명이였을지 모르지만, 사진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진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의 세계가 차츰변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단지 병치로, 단절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을 덧입힘으로 그는 회귀와 복귀라는 속성을 하나 부여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해석도 사진이라는 상징을 영원한 회귀, 지속적인 반복을 상징한다는 입장이 아닐때 가능한 것이겠지만, '수취인불명'에서와 마찬가지로 옛날 사진이라는 것, 그것은 지향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과연 어떠한 형태로써 체화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 이제 말하자. 이런 영화를 찬성해야하는가 반대해야하는가라는 매우 정치적인 질문이 우리에게 놓인다. 여기서 다시금 우리는 영화의 결말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린다.

자, 질문이다. 이제 이 영화를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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