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걸씨가 시나리오의 원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과거 영국과 함께 제국주의의 선봉에 섰던 프랑스의 경시청을 일개 중국 공안 요원이 쑥대밭을 만든다는 황당한 스토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무 생각없이 만든 오로지 재미만을 위해 만든 오락영화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이유는 오래된 영화 황비홍이 떠오르기때문입니다.

영화 황비홍의 시대적 배경은 근대국가로 변화할 무렵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고조되는 시기였죠. 쓰러져 가던 청나라의 고결한 기상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던 황비홍을 연기했던 자가 이연걸이었습니다. 한국인이 과거 일제 침략기를 수치로 여기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애쓰는 것처럼 중국인 이연걸은 그런 과거를 개인적으로 극복함과 동시에 영화적으로도 극복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리쎌웨폰 4에서 관객은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습니다만..

현재 변화하는 국제정세는 영화 키스 오브 드래곤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중국 뻬이징에서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고 15년만에 세계 무역기구에 가입을 하죠.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부르짖는 막강 아메리카에 대적할 만한 잠재력의 국가가 중국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겁니다. 조국의 부상과 함께 아마 이 연걸은 국제정세에서 수동적으로 방어만 하는 황비홍과는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고 봅니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을 제쳐두고 프랑스를 택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과 비교해볼때 그나마 사상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지닌 나라가 프랑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속에서 프랑스는 마치 범죄와 폭력이 창궐하는 나라처럼 보입니다. 신흥 세력인 중국의 범죄조직 보스가 활개를 치고 다니며 무엇보다 공권력의 상징이 경찰내부가 마약과 매춘같은 범죄와 결탁해서 부를 착복하고 있으니까요. 더구나 한심한 것은 그런 부패를 스스로가 척결하지 못하고 동양의 황인종의 자그마한 일개 형사에게 맡겨햐 했답니다. 참 재밌죠? 같은 동양인으로서 또한 서양 제국주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저로서는 이런 설정에 쾌감을 느낍니다.

액션영화로서 너무나 잔인한 폭력이 남발하고 있는 장면들은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과유불급이라 할까요?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그런 과도하게 넘쳐나는 폭력씬들은 모두가 프랑스 경찰들이 최첨단 권총과 소총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난사하기 때문에 발생한답니다. 겁에 질려 머뭇거리는 부하를 향해 서슴치 않고 총을 쏜다거나 시민들의 안전은 상관하지 않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비리 경찰들의 왜곡된 모습은 좋게보면 고의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사실 총을 개발하여 전쟁에 사용한 것은 서양이었죠. 과학기술과 힘의 논리, 폭력적 본능이 적절히 결합하여 탄생한 무지 막지한 괴물이 바로 총입니다. 총은 과거와 현재 서양 제국주의가 행했던 모든 악을 상징한다고 보고 싶습니다. 이 연걸이 총을 사용하는 것은 참 어색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시덥잖은 총은 프랑스 비리 경찰들이 쓰라고 합시다.

반면 이연걸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의 몸뚱아리를 사용합니다. 황색피부에 숏다리, 검은눈동자.. 수년간 단련해 온 그의 육체.. 비록 언제나 맘만 먹으면 그 무엇보다 강력할 살상도구로 변하지만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총, 칼과는 다른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이 연걸 액션에 새로이 등장한 침뭉치가 저는 무척 반갑습니다. 음양오행설이나 단전, 기의 사상은 예로부터 중국 고유무술과 의약술의 이론적 기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체에 흐르는 기의 통로와 관문인 경락과 혈을 통제함으로써 생명을 살리거나 살상할 수 있는 기술이 침술이죠. 너무나 볼품없고 미미하게 보이는 동양적 기술인 침과 자신의 몸뚱아리를 가지고서 프랑스 비리 형사들의 광포한 공격들을 모두 깨부셔버립니다. 마지막으로 이연걸은 입으로 침을 물어 비리형사 두목의 목뒤의 사혈을 꼽아버림으로써 모든 싸움을 끝냅니다. 그것이 바로 "키스 오브 드래곤"이라더군요..

사실 영화는 과도한 폭력과 진부한 스토리로 그리 재밌지 않습니다. 그러나 뤽베송이라는 서양인들과의 공동작업으로 이런 내용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이연걸의 모습이 저는 좋답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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