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엄연히 독립영화라는 것이 존재한다. (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서 어처구니없는 얘긴가? ) 그리고, 그런 한국의 대다수의 독립영화들은 예술영화라는 탈을 쓰고 있어서 관객과의 소통기회가 극히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비주류에서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중에서도 관객과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소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도 생겨나고 있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중인 사람들도 알게모르게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 감독들중의 한 사람이 바로 '박재범' 감독인데 그는 지금까지 단 두편의 장편영화작업을 끝마친 신인 감독이지만 ( 나머지 한 편은 각본과 연기를 담당하고 있다. ) 호러영화팬들에겐 이미 유명한 이름이 되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영화가 오늘 얘기할 한국최고 ( 최초라는 수식어도 붙이고 싶지만 '텔미썸딩'이라는 어설픈 영화가 먼저 그 타이틀을 달고 나왔기때문에 자제하기로 한다.... )의 고어영화 '씨어터'이다.

사실 '씨어터'는 작년인가 부천영화제에 상영된 뒤로 볼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가 우연히 박감독님을 알게돼서 탁군이 활동중인 호러동호회에서 예전에 보았던 작품이다.

이번에 다시 '디렉터스 컷'이라는 거창한 이름아래 감독이 직접 재편집한 버전이 새로 공개 ( 공개라고는 해도 이 영화를 온전히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을 것으로 믿는다 ) 되었는데, 처음 봤을 때의 감흥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조금 차갑게 말하자면, 아는 사람의 영화라는 핸디캡이 없어지고 '씨어터'를 단지 한 편의 호러영화로써 다시 볼 시선을 제공해주었달까. ( 그렇다고 해서 박감독님과의 대인관계가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 )

극장안에 갇힌 사람들이 하룻동안 정체불명의 극장주인 'X'에게 무참히 죽어나간다는 이 단순한 설정 ( 사실 이런 설정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극장을 배경으로 한 걸작 좀비영화 '데몬스'가 있지 않은가. ) 을 가진 영화는 이미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는 더이상 보여줄 것이 없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영화가 '미는' 것은 영화내내 넘쳐나는 고어효과들인데, 두번째 보는 감상인데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 특수효과는 뛰어나다. 그나마 적은 예산이 모두 특수효과에 투입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특히나 한번도 한국영화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 혹은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 배에서 내장이 쏟아지는 장면이나 발목을 톱질하는 장면등은 관객들에게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명장면들이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고어효과를 빼면 영화에서는 더이상 볼 것이 하나도 없다. 사실 처음 봤을 때 즐거웠던 이유는 잔인한 비주얼과는 달리 ( 고어에 대한 불쾌감을 반감시키려는 장치로 집어넣었음이 명백한 ) 영화전반에 넘쳐나는 유머들 때문이었는데, 이미 두번째 감상에서는 어디서 웃음이 터져나와야할지 아ㅡ는 상황이다. 그러니 고어씬이 나오지 않으면 영화는 썰렁한 삼류코미디로밖에 보이지 않으며 지루하기 짝이 없다.

또 내용상의 아쉬움도 있다. 영화의 첫 부분에 '오직 한사람만 나갈수 있다'를 강조하는 것을 보고 탁군은 일본화제작 '배틀 로얄'이나 '버서스(맞나?)'를 떠올렸다. 극중 하나의 반전으로 막판에 가서는 희생자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상황을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쇼걸이나 의혹남등의 아군에서 적으로의 전환이 있긴했지만 첨에 그렇게 강조했던 것에 비하면 조금은 약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진짜 의미없이 죽이고 죽는 이 영화에 약간의 변화를 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면의 사족 ( 지금까지의 일들이 모두 가상현실이었다는 것 ) 도 아쉬움이 남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장면은 한시간 30분동안의 가학적 유희를 이건 가짜다라고 말하며 일순간에 허탈하게 만들정도의 힘을 가진 내가 볼때는 불필요한 장면이다. 그때까지의 장면들이 너무나 잔인해서 그게 현실화되는 것을 감독 스스로가 참기 힘들었던 것일까?

디렉터스 컷이라며 새로 색보정을 입혔다는 화면도, 글쎄, 탁군이 영화기술적 측면에서 무지해서이거나 원래가 디지털의 질감을 싫어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리지널버전과의 차이는 거의 못 느꼈다는 점도 탁군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몸을 비비트는데 한 몫했을 것이다.

'씨어터'는 분명 특별한 영화이고, 박감독님과 그 스텝들의 앞으로의 행보는 확실히 기대되는 것이다. 그러나, '씨어터' 그 자체만으로 놓고 봤을 때는 확실히 이 영화는 두 번 보지는 말았어야 할 영화이다.

p.s. 비디오 대여점에는 '씨어터'가 당당히 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걸보고 '씨어터'를 함부로 평가하는 실수는 하지 말기를. 이 출시판은 오리지널에서 20여분이 잘려나간 또 하나의 디렉터스 컷 ( 그것도 출시사의 제멋대로 버전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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