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자존심을 한껏 세워준 「취화선」의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은 임권택(66) 감독, 정일성(73) 촬영감독, 이태원(65) 태흥영화사 대표의 우정과 집념이 이뤄낸 개가였다.

이들은 이미 2000년 「춘향뎐」을 들고 처음으로 칸영화제의 붉은 카펫을 나란히 밟아 오늘의 감격스런 장면을 예고한 한국영화의 황금 트리오다.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칸, 베니스, 베를린은 반세기가 넘는 전통답게 철저한 검증을 바탕으로 하고 거장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는다.

신인급 감독의 영화를경쟁부문에 초청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상을 시상할 때는 초청작뿐 아니라 이전의 필모그래피까지 고려하는 것이 보통이다.

제작자인 이태원 대표도 이를 의식했는지 「취화선」 초청 통보를 받은 뒤 기자회견에서 "늙은이들을 두번씩이나 불러놓고 빈손으로 보내기야 하겠느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30대 감독과 40대 제작자가 주름잡는 젊은 감각의 영화판 풍토에서, 한두 편이라도 흥행에 실패하면 '퇴물' 취급을 받는 냉혹한 충무로 세태에서 원로 삼총사가이처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들이 손을 처음 잡게 만든 영화는 83년 「비구니」. 그러나 84년 「노을」과87년 「도바리」에 이르기까지 함께 손대는 영화마다 당국의 압력으로 제작을 접어돈과 땀과 시간을 날렸다.

악연처럼 비쳐졌던 이들의 인연은 「장군의 아들」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고 「서편제」의 신화로까지 이어졌다.

그뒤 「태백산맥」 「축제」 「노는 계집 창」 등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면서 이들의 신화는 전설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2000년 「춘향뎐」의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로 다시 주목을 받았고 「취화선」의 칸 감독상 수상으로 새로운 신화를 남기게됐다.

이들 세 명의 원로는 영화 밖에서도 진한 우정을 나누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동안 안보면 보고 싶어하고 누가 연락이라도 끊고 지내면 삐친다고 한다.

또한 임권택과 정일성 감독 밑에서 일했던 제자들은 김의석-최정우, 송능한-이후곤 콤비처럼 대를 이어 우정을 지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캐스팅이나 영화 제작에는 절대 우정과 친분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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