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슬픔을 알아본다. <버스, 정류장>은 원조교제라는 불온한 관계맺음이 아닌 상처입은 두 영혼의 만남을 다룬 영화다. 대학시절, 문학에의 열망으로 충만했으나 현실에선 그 이상이 좌절되어, 보습학원 강사로서 패배감에 젖어 사는 재섭(김태우 분), 그리고 가족의 일그러짐과 십대의 아노미 상태서 방황하는 소희(김민정 분). 둘은 도덕적 갈등, 사회적 시선 따위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서로에게서 소통을 바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처받은 영혼을 위무해줄 대상뿐이기 때문이다. 슬픔이 슬픔을 보고, 대화가 통하고, 기댈 곳이 생기고…. 그렇게 그들은 사랑을 하게 된다.

<버스, 정류장>은 그 소통의 결을 잡아내고자 노력한다. 심심하다싶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상대를 타진하는 다가섬은, 그들의 내면을 읽게 하는 용기 있는 연출력으로 보인다. 또 예고편에서 보던 김민정의 샤워씬 같은 시각적인 접근법을 피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둘 각각의 문제와 상처를 표현해낸 데에 있어선 아쉬운 점이 더러 있다. 재섭의 경우엔 흠이 될 것이 없으나(어떤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어야 할 나이이나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패배주의적 정서에 빠져사는 재섭의 현실은 관객과 공통분모를 가지는 밀도감 있는 미장센으로 넘친다.) 소희의 경우엔 피상적인 느낌이 든다. 원조교제, 임신, 낙태, 다이어트, (말로써만 전달되는)가정사 등으로 대변되는 소희의 문제엔 어딘가 부족함이 있다. 그리고 필요했던 추상적인 막막함과 먹먹함의 기운은 부유하고만 있다. 표현하기 힘든 것을 표현해야하는 상황을 표현하지 못한 결과다. 더불어 그러한 역할을 맡은 김민정은 어떤 인공의 냄새가 짙어 더 공감하기가 힘들다. 이 부분은 차라리 무명의 배우가 맡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돈벌려고 만든 영화 같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아트를 하고 있지도 않다.)

아쉬운 점이 보이긴 하지만 <버스, 정류장>은 기억해야할 작품이다.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적 틀 속에서 10대와 30대의 교감을 진중하게 다루었고, 미비하긴 하지만 그간 한국영화가 다루지 않았던 영역인 입시학원풍경을 흥미롭게 그려냄으로써, 2002년 청소년을 읽을 수 있는 또다른 접근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길게 뻗은 길 위로 버스가 저만치 가고 사라져도, 마음 속 앙금이 다 가시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

내 의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