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메모장이 궁금하다. 그가 구색 갖춘 시나리오를 키우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새삼, 꼬깃해져 있을 그의 메모노트가 궁금해진 것이다. 아마도 거기엔 '회전문', 점집', '오리배', 'Can you speak English?' 등이 적혀있을 것 같다.

홍상수는 이런 단편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서로를 엮어 한 편의 완벽한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그가 챕터를 쓰는 이유도 이러한 메모 확장식 연출법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도 종종 이러한 창작법을 사용하는데(안도현 시인 등) 영상대표 홍상수는 특히나 이 부분에서 뛰어난 직조력을 보인다.

홍상수는 일상의 단면 중 특히, 성적 욕망과 위선의 부분을 회 뜨듯 베어내 보여준다. 대부분 사람 만나면서 일이 벌어지는데, 서로 부딪기면서 재미난 일이 생긴다. 사실 사람 사는 일이 가만히 지켜보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이 많은가. 싸움, 살인, 화재도 있고…. 그 중에서도 홍상수는 눈에 쉽게 뵈는 커다란 것보다는 관찰자적 자세로 개개인의 사생활에 돋보기 들이대기를 좋아한다.

<생활의 발견>도 경수(김상경)라는 남자가 여행 중에 겪게되는 시답잖은 일이 전부이나 춘천여자(예지원)와 경주여자(추상미)를 차례로 만나면서, 재미난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 개개인은 저마다 장기(?)를 가지고 있어서 면밀히 훔쳐보는 두 여자와의 에피소드는 무척이나 재미나다.

먼저 명숙(춘천여자)은 호감가는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초면에 현대무용부터 고전무용까지 선보이는 감정에 솔직한 여자다. 그러나 키스와 섹스를 먼저 구하기도 하는 성적 욕망에도 솔직하다. 한편, 선영(경주여자)은 유부녀이나 오겠다는 사람 막지 않는, 욕망을 애써 억누르지 않는 여자다. 둘 모두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으나, 감정에 충실하고, 나른한 삶에서 일탈을 바라는 공통적 욕망이 있다. 이는 현대인 모두의 심중에 있는 공통적 욕망이기도 하다.

홍상수는 강원도의 힘의 춘천버전, 경주버전을 통해 이전과 같은 내면 읽기를 계속하면서 좀 더 생활 속의 진부한 일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톡 쏘는 유머를 획득하고 더 나아가 생활의 맛을 발견하고 있다.

홍상수의 영화는 늘 발견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그와 똑같은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의 영화는 늘 새로운 영화 읽기를 가능케 하는, 영화의 발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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