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ry의 영화읽기 #7

스릴러Thriller장르는 시나리오의 탄탄한 구성력과 응집력을 필요로 한다. 관객이 단 1초라도 영화속 스토리와 인물들에게서 거리감을 느끼지 않아야 하며, 따라서 사건을 바라보는 관객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노출시키는 연쇄적인 단서들을 허겁지겁 따라가기 바쁜 맹목적인 구경꾼이거나, 나름대로의 논리에 빠져 논리를 펴기에 정신없는 아마추어 탐정이어야 한다. 관객은 결코 예리한 관찰자나 스토리에 불만을 품은 불평분자여서는 안된다.

알드레치 히치콕의 (멕거핀효과) 는 이러한 스릴러 장르의 필요조건이 만들어낸 트릭의 일종이다. 정말 중요한 단서들을 모두 노출시키고도 - 스릴러는 필연적으로 모든 단서가 노출된 Open Game일 수 밖에 없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탐정 소설처럼 범인은 언제나 관객이 추리해 낼 수 있으며 이미 잘 알고 있는 인물들 중 하나여야 하는 것이다 - 관객이 그 사실을 결코 손쉽게는 인지하지 못하도록 조작하기 위해 장윤현 감독은 시선을 미망에 빠지게 만드는 끊임없는 시각 이미지들을 제공한다. (하드고어Hard Gore) 가 표방하는 핏빛 잔임함은 관객이 냉장고 속에 보관된 잘려진 머리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며, 영화속에는 자동차 추돌사고와 같은 단순한 유혹들도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시선의 교란은 결국 <텔미썸딩>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두뇌게임이 지속되도록 만드는 침침한 작품으로 만드는데,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바로 장윤현 감독이 표상들의 홍수속에서 사라진 의미를 찾는 <텔미썸씽>을 연출한 의도임을 인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스릴러는 또한 (반전) 을 예비하는 장르이다. 관객은 카메라의 시선에 고착되고, 범인을 뒤쫓는 주인공과 동일화되며, 따라서 관객은 영화가 진행되고 사건의 연쇄속에서 점점 영화라는 텍스트안에 꼼짝없이 갇혀 버린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텔미썸씽>에 대한 수많은 비평들이 범람하고, 바로 지금 이 글과 같은 정리되지 않은 글들이 생성되는 것은 텍스트에 갇혀버린 관객이 반전을 통해 그 밖으로 내던져진 사실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표출되는 것들이다. - 텍스트내에 갇혀버린 독자/관객의 문제는 알튀세르/기구이론가인 메츠/퍼스/라캉/바르트로 이어지는 현대영화이론의 핵심주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의 형성과 고착을 히치콕의 스릴러만큼 잘 보여주는 장르는 없다 - <텔미썸씽>은 이러한 스릴러가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두루 갖추었으며, 반전으로 치닫는 심리적 분열 또한 설사 그것이 예상되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잔인할 정도로 관객의 미망을 비웃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 글에서는 <텔미썸씽>을 다시 한번 토막토막 잘라내어 이어붙이기를 시도해 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토막난 시체가 다시 살아나지 않듯이 조각난 분석들을 이어붙여도 그것의 조합은 이미 감독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단지 <텔미썸씽>이란 기표뒤에서 미끄러져 사라지는 의미들을 조금 부여잡을 수 있을 뿐이다.

1) 반전

스릴러 장르에서 반전은 극의 재미를 위해 필수적인 장치이다. 그러나 실제로 반전은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서는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최근 개봉한 M 나이트 샤말란's <식스센스The Sixth Sense> 와 데이빗 핀처's <쎄븐Seven> 을 비교해보면 <텔미썸씽> 이 사용한 반전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세븐> 에서 브레드 피트는 결국 케빈 스페이시의 심리전에 말려들어 마지막 7번째 계율인 (분노) 로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케빈 스페이시의 광기를 자신의 손으로 완성시킨다. 그러나, 이 때 영화의 마지막 시퀸스에서 관객에게 보여지는 반전은 관객이 가지고 있는 브레드 피트와 동일화를 더욱 공고히하는데, 따라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서 관객이 갖는 생각은 여전히 브레드 피트의 시선에 고정되고, 영화내에 갖혀 있는 것이다. 결국 <세븐>이 만들어내는 담론은 과연 나라면 케빈 스페이시를 쐈을까 하는 텍스트내적인 질문이다. 물론 아내가 저 정도로 미인이라면 당연하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따라오는 것은 물론이다.

반면에 <식스센스>는 관객의 안정된 시선을 불안정하게 전환시킴으로서 반전을 얻는다. 이제까지 인지했던 모든 표상들이 실제와 다르며, 진정한 의미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깨달음은 이제까지 관객이 마주했던 영화속 모든 진실들을 순식간에 거짓으로 만들어 버린다. 마지막 반전을 통해 이제까지 보아왔던 영화의 내용을 모두 재구성해야 하는 과정의 경험을 통해 관객은 텍스트로부터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게 된다. - 작가author의 죽음과 독자와 작가의 자리바꿈은 바르트가 일찍이 "S/z" 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했던 과정이다.

<텔미썸씽> 에서의 반전의 힘은 장윤현 감독의 지연과 노출의 연출력과 관객의 시선은 가두었다가 다시 내팽개치는 <식스센스>의 그것에서 나온다. 마지막 반전을 통해 이제까지 이해할 수 없기에 다른 자루에 담아두었던 단서들을 이해하게 되며, 지연되었던 결과물들을 습득하게 된다. 스릴러의 서스펜스는 지연과 노출의 균형미에서 찾아지며 만일 <텔미썸씽> 이 <식스센스> 에 비해 구조적으로 매끄럽지 못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이러한 균형미의 균열에서 오는 것이다.

<텔미썸씽> 을 보면서 관객은 차츰 한석규와 동일화되고, 그의 심은하에 대한 막연한 연민에 공감한다. 이제 관객의 시선은 한석규에게 갇히고, 감독이 무언가 '말해줄 때까지' 관객은 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수 없다. 한석규와 심은하의 캐스팅에서 엿보여지는 장윤현 감독의 치밀한 의도가 썸득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텔미썸씽>은 지연과 노출의 유희가 때때로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채수연의 살해동기에서 생기는 균열때문이며, 애초에 40분 가량을 편집을 통해 잘라낸 이야기의 비약이 만들어내는 감독의 의도된 애매함때문이기도 하다.

2) 메시지/모티브/캐릭터

영화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심리적 억압감에 시달린다. 결국 모두 내재된 광기와 사건의 열쇠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장윤현 감독의 연출의도는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의 내부의 심리적 억압pressure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으며, 따라서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치 <식스센스>의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만 바라보는' 유령들처럼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 깊이 침참해 있다.

조반장의 경우 그러한 억압의 중심에는 어머니의 죽음이 놓여있다. 불행히도 관객이 충분히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표현되는데는 실패했지만, 첫 장면에서 그가 자신의 독직혐의로 취조당하는 장면은 그의 어두움을 암시하는 동시에 <쉬리>에서의 마지막 취조실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쉬리>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한석규의 상실감을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느낌에서만은 감독의 의도와 동일하다. 영화의 정보는 봉인되어 있지만, 그는 어쩌면 자신의 양심을 팔고 박사장으로부터 8천만원을 받았을지도 모르며, 적어도 그 돈을 사양할 아무런 의지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혹은 박사장의 계략에 걸려들어 동료들의 불신을 받으며 인간관계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것이든 조반장은 결코 타자와 소통할 수 없는 내면의 비밀스런 어두움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조반장이 채수연의 사건에 개인적인 차원으로까지 집착하는 이유가 되다. 더우기 그것은 사건이 일달락된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조반장이 탈상을 하게 된 것으로 강하게 암시되기도 한다.

조반장은 어떤 형태로든 인간관계에서의 소통의 좌절을 경험한 인물이며, 따라서 오형사(장항선)의 죽음은 단순한 동료의 죽음이 아니라 그를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타자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반장의 모티브는 폐쇄되어 있는 채수연이라는 타자의 내면과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이 잃은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심리적인 것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한석규의 연기는 점점 가능성에 집착하면서 암울하지만, 서서히 상승하고, 마지막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적합하다. 그가 처절한 하이에나를 연기해야 하는 장면은 오직 마지막 장면의 절망적인 절규로도 충분하고 또 넘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오승민(염정아)의 캐릭터는 보다 단선적이며, 개연성이 떨어진다. 사건의 성립에 염정아의 모티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심리에 있는 단서들은 승민이 채수연과 동성애관계이고, 그러한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감정때문에 수연에게 이용당한다는 것들 뿐이다. 따라서 수연을 구하기 위해 화상까지 당한 승민의 맹목성은 마치 사건의 성립을 위해 이어붙인 액서서리처럼 보이고, 이것이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마지막 장면의 승민의 협박이나 수현에 대한 살해위협이 관객에게 느닷없이 보이는 이유가 된다. 승민이 자신이 수현에게 이용당했으며, 수현이 일부러 조반장을 자신들의 과거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자신에게 혐의가 있음을 암시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승민이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것은 의도된 전개이지만, 승민의 맹목성을 토막살인을 감행하는 광기와 연결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승민의 살해모티브의 허약함이 수현의 모티브까지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수현의 살해모티브,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그녀의 내면의 열쇠는 영화가 끝이 나고, 그녀가 마치 랙터 박사처럼 미소지으며, 화사하게 비행기 좌석에 앉아 어쩌면 다음 희생자일지도 모르는 사내에게 미소지을 때조차도 흐릿하다. 그것은 <식스센스>와 달리 반전의 파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기까지 한다. 반전을 위한 반전은 스릴러를 억지스럽게 만든다. 따라서 채수연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차갑고 하얀 얼굴뒤의 어두움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702호실 냉장고 속의 머리가 그녀의 아버지것이고 그것이 분명히 5년전에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그녀의 광기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버지, 그자의 머리는 장윤현감독이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지연시킨 결정적인 정보이다. 그녀가 죽인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수현과 근친상간을 범해왔으며, 집요하게 그녀에게 집착하는 인물이다. 그런 수현의 아버지가 5년전부터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은 수연이 결국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음을 암시한다. 문제는 앞서 말한 하드고어의 잔혹함때문에 관객이 냉장고 속의 머리의 신원을 쉽사리 파악하지 못하도록 감독이 트릭을 쓰고 있다는 점인데, 그렇다면, 장윤현감독이 비교적 쉽게 보여주는 또 다른 결정적인 단서를 눈여겨 보는 것도 괞찮은 방법이다.

승민이 뒤늦게 깨달은 사실 '넌 자살할 애가 아니야'는 승민의 꼭둑각시같은 맹목성과 수현의 집요한 광기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수현의 왜곡된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라캉을 잠시 인용해야 할 듯하다. 라캉의 아동심리발달 단계에서 아버지는 상징계의 정언법으로서 인지발달에 기능한다. 아들이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화하고, 자신이 스스로를 남근phallus을 가진 권력자로서 상정함으로써 억압을 무의식으로 되돌려보내는 반면에, 딸은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통해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남성에 대한 상대적인 여성의 자리를 획득한다. 이 때 프로이트적 환원론, 엘렉트라 컴플렉스가 적용될 수 있지만, 문제는 채수현에게는 경쟁자가 될 만한 어머니가 부재하며, 이미 아버지의 남근은 자신의 것이란 사실이다. - 남근phallus이 페니스pennis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 그녀는 일반여성이 타자the Other를 통해 획득하는 상대적 지위에 아버지라는 상징계를 통해 폭압적으로 이미 자리매김된 상태이다. 그녀는 다른 이들이 결코 획득할 수 없는, 상징계에 의해 억압되는 무의식의 욕망을 바로 그 상징계인 아버지에 의해서 획득했으며, 따라서 그녀에게는 이제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을 억압할 아버지의 상징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보여지는 <햄릿>의 오필리아의 모티브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남자를 사랑하는 채수현이 빠진 모순된 상황을 암시한다. 이로써 그녀의 행위의 모든 모티브들이 완성된다. 그녀는 폴라로이드 사진속의 4명의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다. 자신의 자살미수로 친구들의 동정과 공감과 애정을 이끌어낸후 그들을 이용해 증오의 대상을 죽인다. 5년전 아버지의 살해때에는 수현자신은 관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승민이 주도적으로 다른 3명의 남자들을 이끌고 수현을 위해 살인을 했을 것이다. 혹은 살인에 직접 가담하고 그 근친살해의 심리적 죄의식을 공범자들에게 전이시키고 안정감을 획득하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든 수현 또한 공범이며 근친살해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녀 자신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무의식의 욕망은 살해의 순간 분출과 동시에 억압되고, 이제 왜곡된 상태로 그녀에게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라캉.

파괴된 상징계, 상실된, 그러나 한때 소유되었던 남근에의 욕망, 오필리아의 모티브... 수현은 오필리아처럼 분열되었을지는 몰라도 결코 자살할 여자는 아니다. 냉장고속에 얼려버아버지의 머리와 산속 별장에 보존된 그의 몸뚱아리의 섬뜩함을 이해한다면,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할 타자로 아버지를 욕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억압과 왜곡의 파괴력.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지만, 아버지의 남근을 소유한 이에 대한 분열된 욕망을 채수연은 다른 남자를 만남으로써 충족시킬 수는 없다. 글라스안의 페니스가 똑똑히 드러난 아버지의 육체와 거기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채수현은 자신을 사랑하는 이를 죽여 그들을 조합시킬수 밖에 없다. 그 육체의 비어있는 머리를 찾을때까지는 그 욕망은 충족될 수 없지만, 그 머리는 존재하지 않는 욕망의 대상이다. - 욕망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혼돈이다... 루이 브뉘엘's <욕망의 모호한 대상>

채수현은 상징계가 파괴된채, 자신의 욕망을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표현한다. 아버지에 대한 연정을 가진 소녀가 꾸곤 하는 (꿈속에서 자신의 옷을 찟는 남자) 는 결코 실체를 알 수 없으며, 성장하면서 그 얼굴은 선생님이나 동네 오빠의 것으로 전이된다. - 프로이트... 로브 라이너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는 이에 대한 유쾌한 농담이 나온다. 그러나 <텔미썸씽>에서의 소녀의 욕망은 굳어버린 선지피가 흐르는 살인유희를 부른다.

아버지를 살해하기 전까지는 아버지는 '그자'였지만, 살해된 아버지의 육체는 박제된 욕망의 대상이 된다. 자신에게서 욕망의 대상을 앗아간 타자들에 대한 응징과 욕망의 대상을 현실화시키려는 조합이 채수연의 연쇄살인유희의 모티브이다. 그녀는 그녀 내면의 욕망을 인지하고 그것을 인정할 수 없지만, 동시에 그것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분열된다.

장윤현 감독은 모든 단서들을 영화속에 숨겨놓지만, 불행히도 그들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지연과 노출의 유희에서 헤매야 하기에 결국 관객들은 그만 길을 잃고 만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로 말하는 것이고, 그의 메시지가 영화를 통해 올바로 전달되었는지는 관객의 문제이기에 그는 침묵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화 밖에서 한발 물러나서 왜 토막살해와 이어붙이기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장윤혁 감독의 의도를 읽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어차피 <텔미썸씽>은 관객에게 '왜'라는 질문속에 파묻히도록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3) 분열/관계의 단절/살인유희

<텔미썸씽> 은 단절되고, 분열되며, 결핍되고, 따라서 그 길핍된 부분에 집착하는 스릴러이다. 필연적으로 단절은 봉합되고자 욕망되지만, 진실은 증발되고, 시체는 되살아날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토막난 시체의 유기는 일단 관객에게 맥거핀효과로서 작용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이어붙이는 욕망은 감독이 의도한 단절과 소통의 알레고리이다.

수현은 미모와 재력, 그리고 연민의 대상으로 사진속의 인물들 모두에게서 사랑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그 누구와도 진정한 의사소통을 이루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녀가 그들을 가지고 조합을 만들면서 확실해진다. 그것은 수현 자신의 분열된 정신세계의 상징이자, 상실된 남근의 아버지를 얻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러나 그녀는 필연적으로 좌절할 수 밖에 없고, 거짓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밖에 없다. 결합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조반장을 차로 치어 죽일 수도 있었던 수현은 그러나, 잠시 멈칫한다. 그녀에게 거짓은 이제 증발해버린 진실을 대체할 유일한 진실이기에 결코 어느 누구와도, 조반장과도 함께 갈 수는 없다. 수현은 시체의 위치를 알려주는 물고기와 마음을 담은 그림을 조반장에게 주지만, 그들은 결코 진실로 소통할 수는 없다. '무엇인가 말해 달라고 외쳐도' 진실은 휘발되고, '무엇' 의 자리에서 거짓은 곧 유일한 진실이 된다. 다음 희생자는 분명 조반장일 수 밖에 없었겠지만, 이제 조합은 무의미하기에 기형의 목은 그냥 내던져진다. 단절을 잇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은 더 큰 단절만을 부른다.

반면에 조반장의 단절은 좀더 수동적이다. 그는 단절을 경험한채 남겨지는 인물이며, 소통의 유희에 순지하게 휘둘리는 인물이다. 그가 들은 것은 모두 거짓이며, 그가 믿었던 것은 모두 조작이다. 심은하의 연기는 진실과 거짓의 대비에서 관객과 조반장에게 똑같이 강렬하다. 그녀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진실을 말할때, 비록 거짓된 단절을 위한 의도된 진실일지라도, 수현의 클로즈업은 참혹하게 일그러진다. 반변, 첫번째 조반장과의 취조실에서의 클로즈업은 싸늘한 냉소적인 슬픔이다. 그러나 한석규와 쉽게 동일화되어버린 관객의 시선은 결코 그러한 사실을 인지할 수 없으며, 영화가 무언가 말해 줄 때까지 길을 잃는다. 따라서 조반장은 관객 자신인 것이다.

자신이 믿었던 것들로부터의 단절, 보이는 것과 의미의 상이함, 영화라는 매체가 전달해주는 외시되는 이미지들의 거짓에 대한 무방비의 노출, 현대사회는 보이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회이며, 자신의 앵글 밖으로 타자와의 소통이 불가능한 사회이다. 관객이 단절된 플롯들 속에서 <텔미썸씽>을 이해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단절된 의사소통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복잡한 이 영화의 플롯과 수많은 시각언어들의 유희속에서 감독이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4) 촬영/미장센

끝임없이 비가 쏟아지는 공간과 도회적이고 늘 어두운 하면의 질감은 실상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의 그것이다. 주차장에서의 수현과 조반장의 만남은 비로 인해 폐쇄적이며, 쓰러진 조반장위로 쏟아지는 비와 내려다보는 크레인쇼트는 허무감으로 충만하다. 주의할 점은 수현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진실을 말할 때 외에는 결코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관객에게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관객은 따라서 들리지 않는 거짓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들리는 사실에 둔감하다. 이웃집 소년(소녀)가 남자아이란 생각은 결코 수현의 것이 아니며, '그 아이'의 이미지는 조반장과 관객이 만들어낸 허구이다. 장윤혁 감독은 영화내내 이러한 진실과 거짓, 소통과 단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병치시킴으로써 관객이 외부세계를 인지하는 과정이 얼마나 단절되고, 자기중심적인지를 파해친다.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 진실을 외면한채 거짓을 쫓으며, 보이는 사실을 외면한다. 처음부터 수현이 범인일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러나, 조반장은 범인에게 총을 주지 않으며, 관객은 그저 조반장의 눈으로 진실과 단절된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바라본다.'

마치며...

라캉은 말해지지 않은 것은 반드시 무의식으로부터 회귀한다고 말한다. 말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것이다. 관객은 수많은 기표의 홍수속에서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외시되는 사회'에 있음에도 - 의미와 단절된다. 영화는 외시되는 기표의 유희의 집합체이고, 관객은 보이는 것만 바라본다. 마지막의 반전은 장윤현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소통에 관한 질문이다. 결국 우리는 한석규와 같이 절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텔미썸씽>의 가장 중요한 대사는 심은하의 첫 대사이다. " 전 과거를 기억하지 않아요... 사진 한장없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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