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영화의 판단 기준은 재미다. 상업성과는 의
미과 좀 다르다. 영화에 얼마나 몰두할 수 있느냐,단순
히 보여주기만 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영화를 보고서 내
가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냐 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머
리만 아프면 괜히 신경질만 나니까. 한마디로 비평가나
감독들의 평과는 무관하게 내 수준에 맞는 영화라면 어
떤 영화든지 재미있다. 사실 수준이라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변적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측면에
서 봤을 때 재밌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보고 나서 다
른 영화에 비해 2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도
'이게 뭘까?'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마티유는 콘치타를 사랑하고 육체적인 관계를 원한다.
반면에 콘치타는 마티유와 같이 있으면서 원하는 걸 얻
어내지만 육체적인 관계만은 피한다. 한쪽은 진정한 관
계를 원하지만 다른 한쪽은 실리만을 요구한 채로 두
남녀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마티유
가 원하는 건 명백하다. 이건 영화가 마티유의 시점(?)
에서 전개되어지기 때문에 그걸 보는 관객들은 당연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콘치타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나
로서는 도대체가 알 수 없다. 영화의 끝부분만 아니었
다면 돈과 물질만을 원했다고 생각했을거다. 영화에서
보여진 덫에 걸린 쥐나 술에 빠진 파리가 다시는 원래
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마티유 또한 콘치타에게 빠
져서 벗어날 수 없을거라고말이다. 하지만 돈만을 원했
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길 바란다면 마티유를
그런 식으로 자극할 필요가 있었을까? 일종의 시험이었
을까?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는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
한?

그들의 만남도 애매하다. 우연과 필연이 적당히 섞였
다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잠재의식이라도 우연
은 없죠'라는 심리학 교수의 말이 분명히 우연일 수 밖
에 없는 만남까지도 의심이 가게 해 버렸다. 테러 행위
도 그렇다. 당시 사회가 테러가 잦았던 때인지는 모르
겠지만 처음엔 다분히 목표가 분명한 테러였던 것이 뒤
로 갈수록 무작위적이다. 솔직히 테러라니까 그러려니
하는거지 개중에는 강도라고 우기면 정말 그런가보다
할 장면들도 있다.

영화의 결말도 마찬가지다. 한 진열창에서 어떤 여자
가 하던 행동. 자루 속에서 하얀 드레스들을 꺼내 의자
위에 널더니만 갑자기 피 묻고 헤진 드레스를 꺼내서
바느질을 한다. 그리고 그걸 진열창 밖에서 쳐다보는
주인공들. 마티유는 그걸 보면서 콘치타의 손을 잡고
뭔가 얘기를 하지만 콘치타는 냉랭하기만 하다. 하지만
카메라는 진열창 안쪽에서 그들을 비추고 있고 영화를
보는 이들에겐 아무 말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단
지 여러 가지 추측만 할 뿐이다. 그래서 나도 한가지
추측을 해 본다. 저 자루.무언가 담기 위해 쓰는 저 자
루에는 사람들의 소유물이 들어간다. 그것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욕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들이고,
그 대상은 하얀 옷처럼 깨끗한 것도 있지만 피가 묻고
헤진 더러운 것도 있다. 콘치타를 상징할 수도 있겠지
만 그걸 떠나서 정말 사람들의 욕망의 대상은 다양한
만큼 모호하다. 깨끗함과 더러움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
로.

이 정도에서 애매함이 끝났더라면 더 이상 내 머리를
혹사시킬 이유는 없었을텐데 감독은 무정하게도 나에게
한번 더 머리 싸 맬 기회를 주었다. 마지막 폭파 장면.
이 무차별적인 테러행위에 주인공들이 희생되었는지조
차 분명치가 않다. 아니, 서로간에 욕망의 모호한 대상
이 되었던 그들이라면 역시 테러의 모호한 대상이 되어
사라져 간다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나라면
그들이 죽었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모든 걸 정리한 것
같았던 마티유가 다시 콘치타와 팔짱을 끼고 기차역에
서 나온 것처럼, 테러의 대상이 되지 않아 여전히 만나
고 헤어지는 걸 반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작위적
인 테러라는 건 누구든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누구든 대상이 안 될 수도 있는거니까.

나에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곤혹스럽다. 콘치
타라는 한 인물을 두명의 배우가 연기한다는 걸 알았을
때에도 그랬고, 영화의 결말을 봤을 때에도 그랬다. 그
리고 영화가 마티유 입장에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관
객의 입장 역시 마티유와 동등한 입장으로 콘치타를 바
라보게 된다. 결과는 당연히 '저 여자 정말 모를 여자
야'라는 거다. 하지만 콘치타 입장에서 본다면 모호한
건 마티유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원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육체를 원하는 건지. 만약 영화가 콘치타 입장
에서 서술된다면'저 남자 정말 모를 남자야'라고 할 수
있는 똑같은 영화가 한 편 더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
이 들었을 때는 더욱 곤혹스러웠다.

감독의 색깔이라든지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의 프랑스
나 스페인의 상황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산만하지 않고
좀 더 정확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을텐데. 상류 사
회나 지식인에 대한 비꼼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건 어
디까지나 단순한 내 느낌일 뿐이고.

처음에 말한 것처럼 영화는 재밌지는 않다. 지금의 난
순간적인 번득임과 자극, 그리고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
해져 있기 때문에 보통 때였다면 시간에 쫓겨서 생각하
는 것도 집워치어버릴 수 있을 만큼 애매한 영화다. 하
지만 묘하게도 이런 영화들은 시간을 들여 생각할수록
떠오르는 게 많다. 그것이 감독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나만의 주관적인 것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