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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플린트 (1996, The People vs Larry Flynt)
미국 / 영어 / 코미디, 드라마 / 127분 18세관람가 / 1997년 07월 17일 개봉


출연: 우디 해럴슨, 커트니 러브, 에드워드 노튼
감독: 밀로스 포만
각본: 스코트 알렉산더, 래리 카라체프스키
촬영: 필립 루슬로
제작: 콜럼비아픽처스, Filmhaus, Illusion Entertainment, Ixtlan Corporation, Phoenix Pictures
배급: 콜럼비아픽처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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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한 잡지 '허슬러'의 창간인 래리 플린트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 영화. 두 번이나 아카데미를 거머쥔 밀로스 포먼 감독이 연출하고, 민감한 정치적인 사안을 다룬 영화들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올리버 스톤 감독이 제작했다. 97년 베를린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감탄을 자아낼 만큼 인물 묘사에 있어 눈부신 열연을 보인 우디 해럴슨은 97년 골든 글러브 남우주연상과 97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97년 LA 비평가협회로부터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어떤 잡지보다 더 노골적이고 음란한 도색 잡지를 만들고, 음란물 간행죄로 평생을 법정에 서야했던 남자, 가장 저속한 포르노 잡지로 알려진 '허슬러'를 창간한 래리 플린트. 이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비난받은 한 남자로서, 포르노 백만장자이며 미국 제일의 트러블 메이커의 일생을 다뤄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분노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동시에 받기도 했다. '포르노의 미화' 때문에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던 이 영화는, 래리 플린트라는 한 남자의 일생을 담고는 있지만, '미국 헌법 수정 조항 제1조, 표현의 자유', 즉, "명분없는 포르노 출판인의 저급한 동기와 지고한 표현의 자유 원리 사이에서 미국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코트니 러브는 그룹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미망인이며, 얼터너티브 록 그룹 홀(Hole)의 리더로 잘 알려져있다. 그녀는 이 영화의 알몸 연기를 위해 13Kg의 몸무게를 줄이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는데, 97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으로 그녀가 아닌 줄리엣 비노쉬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야유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녀는 97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뉴욕 비평가협회가 주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10대 후반부터 미국 전역은 물론, 일본과 타이완을 순회하며 연주 활동을 펼친 재능있는 뮤지션으로, 배우로서의 경력은 데뷔작인 <시드와 낸시>, <바스키아트>와 <필링 미네소타>에서의 단역이 고작이다. 이 영화는 감독 밀로스 포먼이 적극 추천하여 이뤄졌다고 한다.

변호사 앨런 아이삭맨 역의 에드워드 노턴은 <프라이멀 피어>에서 깨끗하고 유약한 외모로 완벽하게 리차드 기어를 속여버렸던 다중 인격의 소년범으로 비평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유망주다. 그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우디 해럴슨에 가려졌지만, 이후 여러 화제작에 출연하면서 연기파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래리 플린트와 그의 허슬러 스트립쇼 클럽은 오하이오 공직자들에겐 마치 종양가 같은 존재였다. 미국의 심장부에 섹스 산업을 유입 시키는 행위는 시민들로부터 지탄 받아 마땅한 일이었지만 분명히 떼돈을 만질 수 있는 사업이었다.

래리와 그의 동생 지미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섹스 사업을 번창시켰다. 래리에게 허슬러 클럽은 자신의 비지니스 성공과 고객의 쾌락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공간이었다. 알시아 리저라는 스트립 걸과 깊은 관계에 빠진 후로도 섹스 산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변함 없었다.

알시아는 어릴 때 아버지가 총기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온 가족이 몰살당했고 유일하게 생존하여 고아원에서 성장한 여자이다. 래리 플린트를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에이즈로 죽기까지 오직 한 남자를 위해 지고지순하면서도 헌신적인 사랑을 쏟는다.

허슬러 클럽 경영자에서 일약 백만장자 출판인의 래리 플린트 경력은 클럽 비치용 홍보물 전단인 "허슬러 뉴스레터"를 손수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 전단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내용의 글도 싣고 '플레이 보이'나 '펜트하우스'지의 고급스러운 비주얼의 분위기도 차용했다.

도색 음란 잡지의 상업성을 꿰뚫어 본 래리 플린트는 전국 발매용 월간지로 제작하기로 마음먹고 전재산을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