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나는 낙태 후 엄마를 찾아 나선 17살 소녀입니다. 유진은 후두암으로 혀를 절단해야 할 지도 모르는 뮤지컬 가수고요. 옥남은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매춘을 하다 쫓겨난 가정 주부입니다. 어쩌다 길에서 만난 이 궁상맞은 삼인조는 남해로 길을 떠납니다. 혜나의 엄마를 찾고 모든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꽃섬으로 가려고요.

[꽃섬]은 어딘지 모르게 7,80년대 한국 로드 무비를 연상시키는 작품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런 식의 삼인조가 삼포로 가거나 고래잡으러 떠나는 이야기들이 은근히 많았잖아요. [꽃섬]이 이런 영화들과 다른 점은 우리의 삼인조가 모두 여자들로 구성되었고 스토리가 꼭 리얼리즘에 매달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참 딱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최악의 입장에 몰려있는 사람들이 골라서 만났는지 몰라요. 그 때문에 이들의 설정이 지나치게 강요되었다는 느낌도 들어요. 세 명의 캐릭터와 고민은 분명히 구별되지만 고민거리의 강도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그들은 같은 음조로 흐느끼는 삼중창단처럼 느껴집니다. 관객들에게 더 골치아픈 건 이런 고민과 여정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고유의 상황으로보다는 하나의 관습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결코 순수한 장점은 아닙니다.

한국 남성 예술가들이 당연하다는 듯 여자 캐릭터들에게 가하는 가학적인 느낌을 이 영화에서 제가 발견했다고 해서 지나치게 예민한 것은 아닐 겁니다. 툭하면 여자들의 고민을 '모성 문제'로 돌려버리는 시도도 아주 유쾌하지는 않고요. 이 영화의 세 주인공들은 실제 인물들이라기보다는 외부에서 임의의 목적을 가지고 조각한 상징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불평은 여기서 그만. [꽃섬]은 여전히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아무리 그들의 이야기가 도식적으로 느껴져도 우리의 세 주인공들의 고통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들이 아옹다옹하면서도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며 뭉쳐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해지고요. 사람들이 아무리 복잡한 수사로 작품을 장식 하려고 해도 영화의 핵심은 이것이었다고 믿습니다.

여정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는 꽃섬의 활용 역시 흥미롭습니다. 영화는 꽃섬을 정말로 마술적 치유의 공간으로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섬에서 그들을 맞아주는 옥남의 '천사 친구'는 [꽃섬] 버전 프로스페로입니다. 마술지팡이를 흔들어대는 마법사지요. 이 영화에서는 포크레인입니다만. 영화가 보여주는 치유의 의식은 관객들에게 진짜로 먹히는 치유제로 기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합니다.

디지탈 카메라의 차갑고 거친 화면 역시 이런 이야기에 어울립니다. 겨울을 무대로 한 배경의 차가움을 강조해주기도 하지만 영화의 은근한 초현실주의에 썩 잘 어울리는 믿음직한 사실성을 부여하기도 하거든요. 뜻밖에 영화와 잘 맞는 노영심의 음악 역시 인상적입니다. 우리의 궁상 삼인조를 연기한 세 배우들은 완벽하고요. 우리에겐 정말 좋은 배우들이 많습니다. 찾지 않고 활용을 안 해서 그렇지.

[꽃섬]이 의도했던 마술적 기적에 완전히 도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정서적 충만감은 상당해서 도달하지 못한 부분에 꼭 신경을 쓸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기타등등

아, 도입부에 등장하는 버스 운전자는 정말 짜증이 나더군요. [나비]의 택시 운전사 K 뺨치는 악당이었습니다. [나비]와 [꽃섬]을 영화제 같은 데서 연달아 본 관객들은 어떻게 한국 사람들이 저렇게 말도 안되는 교통 시스템을 참고 버티는지 의아해할 것입니다.

내 의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