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동생의 시나리오를 택해 1인칭으로 만들어낸 독창적인 스릴러 <메멘토>는 그 스타일에 있어서 현대영화사에 길이 남을 모범적인 전형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것은 모든 감독들이 한 번쯤은 꿈꾸었던 영화라는 매체만이 재현할 수 있는 독창성에 대한 발견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른바 영화적 순서를 거꾸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영화 속에서 필름의 되감기를 시도한 첫 장면에서부터 관객에 대한 유쾌한 제안을 던지고 있다. 이후 모든 부분과 부분은 레너드 셀비라는 보험 조사관의 시점에서 그가 기억을 몇 분 밖엔 하지 못한다는 설정에 깊이 감정을 집중하라며 유도한다.

관객은 몇 번의 시퀀스를 통해 이 이야기가 거슬러가는 것임을 그리고 시퀀스가 중단되는 순간에 흑백 화면으로 편집된 레너드의 전화통화 장면을 통해서 그 단서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끝까지 놓지 못한다. 그래서 마침내 레너드가 몰두하는 존 G라는 인물은 실재로 영화 속에서 등장하지도 않고, 그를 죽여야만 하는 이유인 아내의 살인범이라는 사실도 영화 속에서 인정되지 않았다라는 사실에 다가서게 되고, 보기 좋고 똑똑하게 결말을 맺는 강한 편집증 환자의 심리와 그의 강렬한 기억에 대한 집착이 낳고 있는 비극성에 어쩔 수 없이 동조하게 된다.

관객이 이렇게 보기 좋게 넘어가는 이유는 뛰어난 시나리오 때문도 있지만 역시 가이 피어스의 뛰어나고 강렬한 연기라고 보아진다. 말끔한 외모를 일부러 헝클어버린 듯한 외모와 줄곧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차를 타고 등장하는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기억을 기꺼이 자기의 것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에 집착하는 이상 심리자의 심리와 낯선 현실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논리적이고 진지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그가 흑백 처리된 부분에서 새미의 이야기를 조작해 설명하는 것을 들으면 보험 회사의 조사관으로서 회사를 위해서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자신만의 방법과 체계에 대한 지적인 감응이 온다. 그는 아내가 매번 반복해서 읽는 소설에 관해서 결론을 알고 보면 재미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자신의 기억이 중단된 시점에서 무시무시한 결론과 환희의 폴라로이드 사진은 무시한 채로 결론을 알고 싶지 않은 사람 같다. 그는 계속적으로 결론을 유보한 채 또는 결론인 아내의 살인범을 죽였다라는 사실을 자신이 인정하려 하지 않은 채 아내처럼 반복해서 존 G를 찾는 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레너드가 판단하는 테디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테디 역시 또 다른 존 G라는 사실을 자신에게 주입시기는 것이다. 여기서 폴라로이드 사진의 뒷면에 메모를 남기는 데 그 문장은 참 재미있다. "Don't believe his lies"라고 직역하면 "그의 거짓말을 믿지 말아라"이다. 하지만 자막에서는 단지 "믿지 말라"고 처리된다. 말을 바꿔서 래너드가 "Don't believe his words"라고 할 수도 있고 또 "Believe his truth"라고도 적을 수 있을 것이지만 레너드는 도통 테티의 진실을, 자신이 살인범을 잡았다라는 사실과 더불어 새미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납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기억 상실 이후 그의 체계라는 것은 단지 자신을 방어하고 그전 생활을 유지하는 단순한 도구가 될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서 있는 것이다. 그 체계는 항시 살인범을 잡아야 한다고 영화 내내 레너드의 뇌에서 떠나지 않는 그가 기억하고 있는 한에서 마지막 기억에서 배태된 것이기 때문이다(영화에서 레너드의 기억은 아내가 비닐봉지에 싸여져 있는 장면을 보면서 쓰러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맨 얼굴의 아내가 아닌 한 겹 싸여져 있는 그 모습은 레너드의 기억에 죽음으로 단정 지으려고 하는 심리를 더욱 추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에 의한 자신의 존재가치는 1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사내를 더욱더 절대절명의 판단과 논리를 동원하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고 자신의 메모와 문신과 사진밖에 없는 극적 상황에 놓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 자신을 위치시켰건 강한 기억과 앞으로 기억에 대한 반복되는 문신과 메모에 의한 체계의 힘에 의해 조작시켰건 그에 대한 관중의 몰입은 전혀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으며 깊은 감정 이입을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레너드는 세상에 뛰어 나온다. 그리고 테디가 레너드를 이용해서 나탈리의 애인인 지미를 죽였듯이 다시 나탈리에 의해서 이용당한 레너드는 테디를 죽이는 된다. 폴라로이드 사진과 자신에 의한 메모를 통해 구성되고 조작된 기억의 체계란 것이 이다지도 듬직하다지만 정작 자신은 테디와 레너드에게 각자 이용당하면서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단순한 살인청부업자가 아닌가?(이쯤되면 우리는 라깡이 살아있었다면 입에 침을 바르고 말할 자신의 기의를 찾지 못한 채 공허하게 지연되는 기표 그 자체, 메멘토 그 자체를 보여주는 배우와 감독에 대한 과찬에 과찬을 늘어 놓는 모습을 당연스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체계의 주인공, 물신성에 대한 숭배자들의 비참하고 잔혹한 진실이 아닐 수 없는데 그렇다면 영화에서 말하는 메멘토는 무엇일까?

죽음의 기억, 유품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말은 주요 등장인물은 나탈리와 테디에게 그리고 레너드에게 어떤 뜻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레너드에게 있어서 나탈리와 테디는 모두가 아내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하나의 열쇠이고 상징이다. 그녀와 그의 사진을 찍으면서 자료를 혼자서 조작하는 위대한 편집증자의 비애로부터 세상에 나왔다고 생각하는 레너드, 그의 역할은 모든 사람에게 반복충동과 그에 의해 다다르는 죽음으로의 이끌림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죽음이라는 것이 기억보다는 순간 순간 자신의 손에 의해서 쓰여진 메모와 사진에 의존해서 세상을 해석한다면 과연 밝혀낼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메멘토 모리라는 것은 테디에게서 바로 레너드의 존재인 것이다. 테디를 찍은 사진은 바로 기억이 스스로의 체계에 의지해서 해석을 하는과정을 통해 테디의 메멘토가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문신 투성이 레너드의 존재야말로 아내의 메멘토 그 자체로 죽음의 순결한 의미와 이에 따른 복수심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 순도 100퍼센트의 물건으로서 메멘토인 것이다. 나탈리의 존재는 영화 속에서 지미의 죽음에 대한 유품이 되어서 스스로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메멘토 나탈리는 메멘토 레너드를 통해 메멘토 테디를 단죄한다. 즉 메멘토 테디는 메멘토 지미인 나탈리에 의해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순수 메멘토 레너드에 의해 밟게 된다. 이제 메멘토 레너드의 살갗에 적히게 되는 사실은 어떤 것일까? 메멘토 모리는 그 자체로 사실이고 진실이지만 언제나 진실을 받아들이게 될 때는 잔혹하기만 한 것이다.

영화에서 레너드는 레니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반면 테디는 겜블 형사라는 말 대신 테디라고 불러라고 한다. 잠복 임무를 맡으면서 부패한 경찰인 테디가 스스로의 이름을 숨기려하는 것과 기억이 지속되지도 못하는 형편에조차 레니라고 부르지 말아달라는 레너드의 성격과 이름에 대한 상반된 집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어쩌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현대에서야 비로소 탄생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일상의 진실의 정곡을 찌르는 정말 근사한 영화를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 반복충동이라는 순수 충동과 순수 메멘토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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