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버거슨이 쓴 [발칙한 한국학]를 읽다보면 영 못마땅하고, 심기 거슬리는 우리네 습성이 바로 ‘같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다름, 곧 차이에 대한 인정은커녕 자신에겐 두려움으로, 타인에겐 배척으로 일관하는 한국사회 내 획일화는 심각한 수준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비단 한국내의 문제가 아니라, 바야흐로 그토록 풍요로운 잔치를 누리게 해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얄궂은 문제점이라는 사실을 더불어 직시해야 할 것 같군요. 앤디워홀이 팝아트로 비아냥거렸듯 제가 소개할 사랑스러운 별종들의 이야기도 만만찮은 강도로 ‘내’가 아닌 ‘당신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주류를 향한 비판적 시각을 이니드와 시모어라는 세계대표급 비주류 군상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작인 만화 [고스트 월드]를 시작으로 제작군단 모두가 비주류 감성으로 똘똘 뭉친 이 영화는 자기옹호적인 성격으로 맹랑한 독설을 퍼붓고 있지요. 그러나 자기연민적 범주로 가둘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들이 비판하고 있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는 점에서 지독히도 성찰적인 영화라는 거지요. 18살 소녀 이니드(도라 버치)는 모두가 그런대로 적응해버린 현대사회에 규합될 수 없는 아웃사이더 청춘이지요. 유일한 소통통로인 그녀의 친구 레베카의 삶 또한 ‘살아내고’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싫고 밉고 이해할 수 없는 것 천지인 세상 속에 이니드는 왕따 당하기 앞서 왕따를 시키는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와중 시모어(스티브 부세미)라는 40대 남자에게 사로잡히게 되지요. 그녀의 맹랑한 사랑은 “내가 혐오하는 것들과 정반대의 남자야”라는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자기애에 대한 명백한 소신을 나타냅니다. “빅맥과 나이키만 던져주면 만사 오케이”라며 현실을 냉소하는 그는 구식 레코드판만 모으며 살아가는 별종입니다. 시모어는 이니드에게 있어 그 자신의 미래가 투영된 인물이라 할 수 있겠죠. 이니드는 발군의 의지로 그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별종이 당하는 폭력은 왜, 저런 얘랑 노니?로 축약할 수 있지요)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뭐. 먼 곳에서 찾지 말고 둘이 사랑하면 안 되나? 그래요. 그들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니드는 종착역을 알 수 없는 버스를 타고 이 세계를 떠납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떠나버렸으면 좋겠어” 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죠. 영화의 결말은 언해피앤딩을 예고하지만, 나는 이니드가 당도할 곳이 어른의 세계(타협과 체념)가 아닌 그녀만의 세계이길 바랍니다.

도발적이고 능동적인 형태로 세상을 비웃는 이니드의 행동은 어르신이 보시기에 벼르장머리없고, 사회 부적응자의 완벽한 초상이겠지요. 그러나 그녀가 속해야 할 세상이 ‘개인’에게 정당한 시선으로 배려하고 있는지 묵묵부답할 수밖에 없군요. 이니드의 미술교사가 기득권을 남발하며 개인의 창의성을 묵살하는 와중에 믿을 곳은 오직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가 지칭하는 ‘별종’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함의들이 존재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영화 속 시모어와 이니드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겠지만, 현실에서도 과연 그러할까요? 이런 측면에서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어쩌면 쓸데없는 비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넘쳐나는 수많은 결정들, 중대한 사안들이 사실은 ‘남들이 하니까’라는 명분으로 자행되고 있지는 않은가. 퀘스천 마크를 달아보세요. 으스스... 섬뜩하지 않나요?

참고로 <어바웃 어 보이>의 마커스의 패션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는데 라스트 신에 이르자 말끔하게 갈아입혔더군요. 내내 즐겁게 보다가 더럭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막 버스에서 내려 우리에게 귀환할 이니드가 설마 프라다 백을 들고 서 있진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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