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소녀백서/고스트 월드]의 주인공 이니드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녀입니다. 똑똑한 아이지만 대학에 갈 생각은 없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습니다. 하는 일이라고는 친구 레베카와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며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진부한 세상에 대해 괴팍한 주석을 다는 것뿐입니다.

이니드의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녀는 그녀가 속해 있는 LA 변두리의 세계가 싫습니다. 아니, 그녀는 세계 자체가 싫습니다. LA 밖을 벗어난다고 특별히 달라질 거라고 믿지도 않아요. 이니드가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건 그녀가 싫어하는 세상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고등학교는 이니드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영화가 졸업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주변 동급생들이 삶의 선택을 시작하는 이 시기에 이니드의 의도적인 태만함은 공공연하게 노출됩니다.

영화엔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1) 이니드는 어쩌다 만난 레코드 수집가인 시모어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2) 그러는 동안 이니드와 레베카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집니다.

이 두 이야기는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건 시모어에 대한 이니드의 집착이 레베카와의 우정을 흐리게 한다는 인과 이상의 것입니다. 이니드에게 시모어는 그들의 지루한 세계에서 성공적으로 자신을 격리시킨 성공자입니다. 그 꼴이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건 상관 없습니다. 이니드가 시모어를 영웅이라고 말할 때, 그녀는 진심입니다. 하지만 레베카는 다릅니다. 이니드처럼 자신을 철저하게 세상과 격리시키려 하지 않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이니드와 레베카는 결국 다른 길을 갈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눈 앞에서 보는 인과가 바뀐 것이죠. 시모어에 대한 집착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참 암담한 이야기이고, 감독 테리 즈위고프는 그런 암담함을 일부러 감추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영화는 그의 다큐멘터리 [크럼]처럼 황량한 세계와 캐릭터들에 대한 컴컴한 코미디입니다. 즈위코프에겐 만화가적 감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크럼이나 이 영화의 원작인 대니얼 클로즈의 만화책에 매료되었던 것도 그 때문인 듯 해요. 단순한 선과 평면성이 주는 냉정하고 건조한 느낌이 영화 전체에 가득하거든요. 그렇다고 즈위코프가 클로즈의 만화책에서 비주얼을 몽땅 빌려왔다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 [고스트 월드]의 비주얼은 지극히 만화적이지만 만화 [고스트 월드]의 가라앉고 칙칙한 세계와는 달리 원색적이고 목소리가 분명합니다.

영화의 결말은 다소 초현실적입니다. 이니드는 마치 LA의 현실 세계에서 증발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애당초부터 이 세계가 '고스트 월드'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건 결코 존재 상실로 해석될 만한 것은 아니죠.

기타등등

1. 우리 관객들은 [고양이를 부탁해]와의 유사성을 떠올렸을 겁니다.
2. 전 정말 [판타스틱 소녀백서]라는 상영제가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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