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평론 무용론이 나온 적이 있었다. 이제 평론이라는 것은 문화상품을 포장하는 겉포장지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는 주장말이다. 평론이라는 것이 하나의 창작품, 작품을 새로 재해석 하는 작업이며 재생산해내는 작업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고 있으나 자본에 매여있게 되면 문화는 상품이 되어버리고 각종 이해와 권력의 망 속에서 정작 평론 혹은 비평을 쓰는 사람의 손은 온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된다. 자기 검열은 군사정권하에서는 정치적인 죽음을 피해가기 위한 방어기제로써 작용하고 생성되었다면 문민정부(아 참 오래간만에 써보는..단어이군)하에서의 그것은 거대해지는 문화상품의 권력하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서두가 길고 (겉으로) 비장하였으나 하고 싶은 말은 하나이다. 소름 이거 재미없다는 이야기. 공포 영화 매니아의 반열은 아니지만 공포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때 이 영화는 분명 미덕이 있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절대로 모 잡지에서의 평론이나 별점매기는 사람들의 20자평에서처럼 컬트화될만한 공포영화 명작은 아니라는 점이다. 난 그사람들 말만 믿고 기대하고 봤다가 실망만하고 왔다.

삼사에서 이름만 바꾸고 진행자만 바꿔단 영화소개프로에서 보여준 장면들이 요즘에는 거의 영화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작금의 상태에서 '소름'이 당기지 않는 관객들은 굳이 돈주고 영화관에서 볼 필요가 없다. 아쉽게도 '소름'은 공포영화가 구성되는 요소들을 많이 간과한 듯 싶다.

우리나라의 공포영화는 서양의 공포영화의 조류와는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월하의 공동묘지','여곡성'등에서 등장하는 귀신은 억압받는 조선조 여인네들의 한이 그 중심에 있다. 한(限)이라는 정서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야겠으나 아들을 못낳거나 시어미와의 갈등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귀신의 억울함이 영화 전체를 끌고 나가는 주동력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영화의 전통은 고소영, 정우성 주연의 '구미호'정도에서 끝나버린 듯 싶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포영화는 머리에 대못을 박고 설치는 '헬레이져', 전기톱에 아이스하키 마스크를 들고 토막살인을 주로하는 '13일의 금요일',빨간 줄무늬 쫄티를 입고 칼날달린 장갑을 끼고 다니는 '나이트메어'와 같은 부류이다. 80년대 미국의 호황기에 자유분방한 청소년들이 탈선을 할라치면 다가와 칼이며 톱이며 도끼로 난도질 해버리는 보수적 이데올로기 선전도구가 되어버린 공포영화가 우리가 떠올리는 공포영화이다.

이러한 공포영화에서는 스크림시리즈에서 줄기차게 이야기되는 일종의 법칙대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장르영화적 방식을 답습하게 된다. 관객들은 이러한 방식을 진부한 방식이라고 싫어하는 반면에 이러한 방식에 크게 벗어나는 영화가 등장하게 되면 그것이 낯설어하며 공포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가위,해변으로 가다,찍히면 죽는다가 진부한 방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기로 마음을 먹고 공식에 맞추어 나아간 공포영화라면 이 <소름>은 후자의 선택을 하였다. 보이지 않는 공포라는 카피문구가 보여주듯 '소름'은 504호라는 한 재개발 대상 아파트의 방에 얽힌 미스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1. 영화는 영화, 연극은 연극

그러나 아쉽게도 이 영화는 관객들의 폭넓은 이해를 얻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몇가지가 있다. 그것은 영화가 연출의 힘으로 이끌려간다기 보다는 연기자들의 연기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용현역의 김명민이나 선영역의 장진영의 연기는 김명민은 영화 데뷔작이라는 점, 장진영은 처음 맡아보는 주연이라는 점이라는 마이너스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호연을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 보면 따뜻해 보이나 냉소적이며 비정상적인 성격의 용현을 김명민은 매우 자연스럽게 소화해냈으며 연신 맞아대며 줄담배를 피워대는 선영을 장진영은 딱 그로 부활시켰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고 연극은 연극이다.

다른 영화에서의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영화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몇가지 있는데 그것은 인물들이나 배우들에게 담겨있는게 아니라 스토리상 비정상적인 우연이나 사건이 개입에 달려있다. 그 유명한 맥거핀 효과라는 것도 이미 한 정석이 되었지만 이것 역시 배우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배우들을 아무리 비극적인 상황에 두고 롱테이크로 인간의 비참함, 잔인함을 담아놓은다고 손 치더래도 관객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한 지루한 객관화는 '저사람 사람 잡겠네'의 명제 그이상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물론 그 장면을 보면서 '와, 둘이 연기 정말 잘한다'라고 칭찬해줄수 있으나 그러한 칭찬은 소극장무대에서나 적합한 일이지 깜짝깜짝 놀라러 온 관객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호사라고 볼 수 있다.

영화와 연극의 화합적 결합은 좋은 영화로서 필수이겠지만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연출방식은 이질감만 줄뿐이다. 나는 차라리 죽이려면 푹푹 찔러죽여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오래싸우는 것을 구경해본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감정이 곧 자제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의 공포를 느끼는 심리는 사인파처럼 일정한 패턴으로 꾸준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맥동류나 단절파처럼 틱틱띠로 진행되는 것이다.

2. 극중 감독 이제는 지겹다.

스토리 텔링을 함에 있어서 나레이션 역할을 대신하는 감독의 분신은 어느 영화에서나 있게 마련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쉽게 무협영화를 볼 수 있다. 감독은 쉴새없이 말하고 그러한 가르침은 결말에 꼭 실현된다. 이것은 관객에게 그렇게 결말이 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효과에 덧붙여 그러한 기대를 나중에 어그러뜨리는 반전의 효과도 줄 수 있기에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공포영화에서의 극중 감독자리는 이제는 용도폐기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극중에 등장하는 이작가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공포소설에 관한 이야기서부터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에 대한 토로, 신세한탄까지를 보면서 누가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가 어떻게 될른지 모를까? 공포영화는 기본적으로 미스테리 구조를 띌 수 밖에 없다. 공포의 이면에는 논리적인 설명방식은 아니더래도 인과적인 설명방식으로 왜 공포를 느껴야하는가에 대한 답이 존재해야한다. 작가나 감독은 스토리에 공포,불안의 정체를 어느정도 보여줄 것인가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커다란 책무인데 이러한 책무를 작중 인물에게 떠넘겨버리면 이건 마치 변사를 내세워 작품에몰입을 강요하는 것과 다를바 없지 않은가?

각본을 객관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감독의 연출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작중에 또다른 감독을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그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그 참담한 실패를 우리는 스크림 시리즈에서 이미 보지 않았는가? 공포영화가 기본적으로 미스테리 구조를 띌 수 밖에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공포영화에서 가지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각본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각본은 관객과 작가의 줄다리기에서 작가가 승리하도록 짜여야지 관객이 승리하도록 짜이면 안된다.

3. 암시.. 두드러지 않는 암시는 암시가 아니다.

두드러지는 암시가 아니면 암시가 아니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그 두드러짐을 억눌렀으면 모르되 그것도 아닌 암시는 절망적이다. 더구나 공포영화와 같은 장르영화에서는 말이다. 극중에서 이 영화가 비참하고 황당하게 만드는 암시는 크게 세가지이다. 선영과 용현의 관계, 선영과 미정의 관계, 용현과 504호와의 관계이다. 그러나 선영과 용현의 관계에 분명 촛점을 맞추고 있는 듯 싶은데 절대 이것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그 장면에서 긴박하거나 절망적인 음악효과 하나 정도 조용히 까는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건조해지고 특수효과에 기대지 않고서 보이지 않는 공포(과연 이 공포가 설득력있게 관객들을 뒤흔들었는지는 의문이지만)를 창출한다는 기획의도는 좋았으나 쓸데는 써야하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관객의 관습성에 어느정도는 호응해주어야한다는 공포영화의 기본적인 방식이 아닌가?

4. 음..

관객의 관습성과 작가의 고집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영화의 평가에 있어서 흥행성적만으로 그 작품의 호, 불호를 이야기하는 것도 옳은 비평이나 평가가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작가의 고집이 새로운 이해관을 열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소름에서 부족한 것, 소름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공포영화를 보러오는 관객의 성향파악의 실패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연기 잘하는 연극을 보러오는 것이 아니라 깜짝 깜짝 놀라고 싶어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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