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프란체스카와 로버트 킨케이드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떠오른다. 낯설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그 대목에서 영화는 이야기의 첫마디를 내 놓기 시작한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중년의 사랑과 첫사랑이라는 상대성이 있기는 하지만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이라는 점에서 그 둘은 뚜렷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사랑의 시점의 전이는 동/서양의 상반된 가치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다나카 레나(아이다 사토카)는 봄방학을 맞아 병실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수발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우연히 엄마의 소지품에서 24년 전 엄마가 첫사랑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를 발견하고, 죽어 가는 엄마에게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게 된다.

영화 "첫사랑"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러브레터의 반쪽 짜리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는 과정을 유쾌하게 담아 내는데 그 매력이 숨어 있다. 물론 거기에는 동일인물의 시나리오가 한 몫 한다는 이점도 있겠지만 만화와 같은 내러티브 구조를 즐겨 쓰는 일본 로맨스물의 느낌이 많이 닮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토카의 엄마 시즈에의 첫사랑으로 등장하는 신이치로라는 중년의 남자는 술과 도박에 절어 있지만 뭔지 모를 친근함과 솔직함으로 자신의 아픈 과거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첫사랑이라는 무궁무진한 호기심과 아련한 기억을 자극할 것만 같은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더불어 사토카가 고향에서 만나게 되는 택시기사 아저씨 또한 그러한 인물의 배경에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벚꽃이라는 모티브는 영화 속에서, 엄마의 봉인된 추억 안에서, 수장된 마을 밖에서, 모든 것을 감싸안으며 잊혀졌던 과거의 시간과 씨름하며 소녀 사토카에게 신비로움으로 다가온다. 벚꽃은 항상 일본영화 안에서 시간과 기억의 발원지로서 자리잡아 왔었다. "4월이야기"의 흐드러지는 벚꽃과 "비밀의 화원"의 소담한 벚꽃들은 그러한 연유들의 시원(始原)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첫사랑이라는 소중한 기억의 공간 안에서 무엇이 그들을 묶고, 무엇이 그들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떠올릴 수 있는 힘이 되게 해주는지는 분명해 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소한 얘깃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작은 소품으로 밖에 남질 못하는 이유는 영화가 갖고 있는 감동의 끈이 너무 단순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복선이 너무 동화화 되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무게감이 영화라고 하기에는 미들급에 불과한 설정이 아니었나 한다. 추석이나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보는 작은 특집극 정도라면 정말 좋은 드라마가 아니였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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