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ry의 영화읽기 #3

중산층 가족의 붕괴... 그것을 드러내는 샘 멘데스의 몇 가지 미덕들...

감독: 샘 멘데스
출연: 케빈 스페이시, 아네트 베닝

샘 멘데스의 <아메리칸 뷰티>를 단순한 블랙 코미디로 정의 내리는 것은 잘못된 생각임에 분명하다. 물론 레스터 버냄의 혼란스러운 행위들은 희극적인 것임에 분명하지만, 근본적으로 <아메리칸 뷰티>는 서글픈 영화이다. 그러나, 그러한 슬픔이 이 영화가 주인공의 허무한 죽음으로 종결되기 때문에 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레스터 버냄의 죽음은 단지 슬픔의 한 부분일 뿐이며 오히려 슬픔의 끝이다. 샘 맨데스는 영화 전편에 걸쳐서 레스터 버냄의 자기 비하적이고 느글거리는 모습을 서글프게 쫓아간다. 감독에게 있어서, 버냄은 그 자신의 독백대로 일년 후 죽을 인물이 아니라, 오랜 동안 이미 죽어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가 다시 소생하는 순간에 그의 목숨을 앗아가는 총성은 잘 정돈된 캘리포니아의 중산층 주택지구의 롱샷을 더없이 허망하게 만든다.

영화가 현실 문제의 직접적인 반영이라고 할 때, 최근 헐리우드 영화의 몇몇 수작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는 미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종의 경향성이 엿보인다. 그것은 섬머시즌 블록버스터 Summer Season Block Buster 를 제외한 소수의 진지한 영화들의 공통된 관심사로서, 바로 미국이라는 현대 사회를 지탱해온 중산층 가족 WASP 이 숨기고 있는 위선과 내부로부터의 붕괴이다. 보수적인 중산층 가정의 붕괴와 내부의 도덕적 타락, 그속에서의 부모세대와 자식간의 갈등은 사실 주류영화보다는 웨스 크레이븐을 위사한 스플레터 및 슬래셔 무비의 오랜 관심사였다. 그리고, 90년대 후반 그러한 고민을 받아들이는 헐리우드 영화의 경향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최근의 이안 감독의 99년작 <아이스 스톰>과 폴 슈레이더가 감독한 <어플릭션>, 혹은 토드 솔론즈의 <해피니스>등은 그러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가족의 문제는 실상, 타란티노류의 재기발랄한 영화보다 헐리우드가 채택하는 훨씬 보편적인 주제이다.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이는 안정된 중산층 가족의 피폐한 몰골은 어쩌면, 헐리우드의 신속한 자기 반영성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60년대의 뉴아메리칸 시네마가 담아낸 자유주의적인 경향은 케네디시대와 이어서 나타난 보수반동의 사회성향을 반영한다. 그리고, 7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는 기간동안의 스타워즈시리즈가 이루어낸 신화는 테크놀로지적이라기 보다는 웨스턴의 소멸이 만들어낸 공백을 훌륭하게 매꾸어준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걸프전의 승리로 베트남의 악몽에서 벗어난듯이 다시 민주당을 선택했다. 하지만, 클린턴의 도덕적 불감증은 어쩌면 미국민들에게 60년대와 70년대 베트남전의 패배로 나타난 정신적 혼란을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80년대의 보수적 레이거니즘 이후에야 90년대 들어서 겨우 어설프게 재건된 아메리칸 드림 앞에서 그들은 자꾸만 집안 단속을 하고 있다. 가족의 붕괴, 특히 중산층 가족의 붕괴는 미국에게 또 다른 혼란을 가져다줄 것이고, 그것이 60년대와 70년대 미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샘 맨데스와 이안, 혹은 폴 토마스 앤더슨을 비교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그것은 외부에서 내부를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과, 내부의 일부로서의 시선을 함께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분명히 샘 맨데스나 이안보다 감상적이며, 그 자신이 미국 중산층의 일부분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가족의 비극은 슬퍼하며 통곡해야 할 감정적인 대상물이다. 반면에, 미국의 타자인 이안 감독이 <아이스 스톰>에서 보여주는 시선은 섬뜩하다. 거기에는 철저하게 매마른 날카로움이 있다. 가족들은 자신만의 껍질속에 갇혀서 살을 부비지 못하고, 타락은 위선적 미소뒤에 감춰진다. 이 작품에 대해,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결코 우호적일 수 없었던 것은 이 점 때문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극장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샘 맨데스의 <아메리칸 뷰티>에게 돌아간 아카데미상은 의외이면서도 동시에 당연한 결과이다. 레스터 버냄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묘하게 동정적이면서도, 비비꼬여있다. 버냄이 무기력한 일상에서 깨어나 19세때의 생기를 되찾는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딸의 친구인 안젤라에게 느끼는 성욕 때문이다. 버냄이 중년의 나이에 자아상실을 각성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분명 숭고한 무엇이다. 그러나, 샌 맨데스는 타자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따라서 케빈 스페이시가 만들어내는 버냄의 캐릭터는 묘하게 꼬여있다. 아네트 베닝의 연기가 눈이 부셨음에도 케빈 스페이시 앞에서 빛을 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딸의 친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샘 맨데스는 버냄을 인도하는 동반자로서 리키라는 대마초 흡연자를 등장시키는데, 이는 마치 보수주의에 던지는 일종의 경고처럼 보인다. <아메리칸 뷰티>의 모든 등장 인물들은 정체된 보수성에서 조금씩 진보적인 정치성으로 이동해나가고 있다. 그 끝에는 리키가 존재하며, 그것은 샘 맨데스이기도 하다. 그가 찍은, 리키의 비디오에 담긴 삶의 아름다움들은 리키의 아버지가 보기에는 무의미한 것들이다. 그러나, 리키의 아버지 또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닫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를 감싸고 있는 선입견은 자신과 버냄을 파멸로 몰아간다.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삶은 이미 죽어있는 것이라고 샘 맨데스는 말한다. 그는 <아메리칸 뷰티>속에서 WASP 의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시니컬한 동시에 묘하게 동정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이안과 달리 그에게는 분명한 지향점이 존재한다. 해부학 시간으로 끝나버린 <아이스 스톰>과 달리 <아메리칸 뷰티>에는 리키의 시선이 존재한다. 리키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미국인들이 잃어버렸다고 감독이 생각하는 바로 그 부분이다. 그 순간 이 영화는 매우 정치적인 텍스트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안정된 중산층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뉴욕으로 떠나는 소년과 소녀는 대마초로 벌은 돈을 쥐고 있으나 이 영화의 유일한 희망이며, 자신의 정체성에 스스로를 역겨워하면서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끄는 리키의 아버지는 해병대 대령이다. 비록 레스터 버냄의 마지막 혼잣말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아메리칸 뷰티>를 아카데미가 선택했다는 사실은 샘 맨데스의 지향점에 대한 동의라기 보다는 시니컬하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안젤라에 대한 버냄의 집착은 이 영화를 가장 슬프고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핵심 갈등 구조이다. 그리고, 그가 부엌에서 거실의 안젤라에게로 건너갈 때,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던 불길에 자신의 마지막 살점을 연소시키는 행위이다. 평범한 것을 끔직하게 두려워하는 평범한 금발머리의 미국산 장미꽃인 안젤라는 버냄에게 있어서 존재의 마지막 지향점이었다. 버냄이 총을 맞는 순간 들고있던 가족의 사진은 어쩌면, 아메리칸 뷰티의 평범함을 발견한 그가 애써 붙잡으려한 마지막 삶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제까지 관객이 보아온 것들과는 너무나 다른 레스터 버냄의 모습이다. 따라서, 샘 맨데스는 뻔한 대사를 읊조리는 버냄을 죽여버리고는 흥건한 피 위에 엎어진 그의 희미한 미소를 잡아냄으로써, 미국이 외쳐대는 가족의 허망함을 드러낸다. 그것은 이안감독이 아들의 무사함을 알고 울음을 터트리는 케빈 클라인의 모습에서 담아내려 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이다. 샘 맨데스는 가족을 헤집어놓고도 그들을 다시 재조립해주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헐리우드에서 가족은 붕괴되어지기 일보 직전이 것이며,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어붙이고자 노력해야 할 대상인지도 모르지만, 샘 맨데스에게 있어서는 이미 일년 전에, 혹은 지금은 모르지만 일년 후에는 죽어버릴 것인지도 모른다. <아메리칸 뷰티>의 독특한 정조는 이러한 미묘한 시선에서 오는 것이다.

<아메리칸 뷰티>가 만들어내는 정치적 스펙트럼은 그 주파수가 일정하기 보다는 산란되어지는 것이다. 샘 맨데스는 원래의 엔딩에 있던 법정 장면 및 장례식 장면등의 15분 가량의 에피소드를 편집과정에서 삭제하고 열려진 결말로서 이야기를 끝맺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아메리칸 뷰티>를 복합적인 텍스트로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시선이 영화속에 드러났다면, <아메리칸 뷰티>는 순식간에 보수적인 텍스트로 전락할 위태로운 상태였고, 래스터 버냄은 사랑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완벽한 타자로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샘 맨데tm는 이 영화에서 몇 가지 미덕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아주 특별한 영화를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내 의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