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의 악동이 이 감동적인 다큐멘타리를 만들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사실 초현실주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강령에 비추어볼 때 다큐멘타리와는 적대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목표는 객관적인 실재를 의심케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공격하는 객관적 실재라는 것 속에는 우리의 감각적 상식마저도 포함된다. <안달루시아의 개>의 한 인물이 손바닥을 펼 때 우리는 그의 손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사이로 개미들이 들락거리는 '초현실적인 광경'을 목도한다. 이 장면은 우리 자신의 신체에 대한 감각을 뒤흔든다. 감각적 상식을 타성적인 것으로 조롱함으로써 초현실주의자들은 세계를 우리 눈앞에서 위태로운 어떤 것으로 변모시킨다. 이것이 초현실주의자들이 의도하는 예술적 효과요, 그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전복을 도모했다. 그런데 초현실주의자 브뉘엘이 다큐멘타리를 만든 것이다. 그것도 현실에 대한 최대의 경외감을 가지고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인간 지리학이라고까지 명명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하겠다는 신념의 표명이다. 브뉘엘은 초현실주의에서 '개종'한 것인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우선 '그렇다' 부터.. 브뉘엘은 이 영화에서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정직하게 응시한다. '빵 없는 대지'라는 제목이 단적으로 말해주듯 영화는 무지와 위협적인 자연,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빈곤에 시달리는 스페인 벽촌을 보여준다. 영화 내내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배고픔의 처참함이다.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초현실주의자들의 재기가 배고픔이라는 감각적 실재를 조롱할 수는 없는 법이다. 너무나 큰 인간적 고통 앞에서, 영화의 나레이터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고백을 수 차례 들려 줄 수밖에 없다. 그들이 기획한 혁명은, 세계의 변혁은 한낱 유아론(唯我論)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빵없는 대지>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초현실적이다. 영화가 묘사하는 현실은 문명에 관한 우리의 기존 관념을 뒤흔든다. 영화는 한 장면에서 벌에 쏘여 죽는 당나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장면은 피아노 위에 얹힌 당나귀의 시체보다 더 초현실적이다. 아이가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참담한 광경은 대로에서 스스로 차에 치어 죽는 소녀(<안달루시아의 개>의 한 장면)보다 더 초현실적이다. 브뉘엘은 이런 초현실적인 현실에 압도된 것이다. 그래서 <빵 없는 대지>에서의 브뉘엘의 작업은 초현실적인 상황을 현실에서 찾아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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