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말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화가 카라바지오의 삶을, 관계를 중심으로 그린 영화. 여러 영상 메카니즘을 복합적으로 구사하기 좋아했던 데릭 저먼은 이 영화에서만은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회화에서 시각 모티브를 빌어 온 카라바지오 스타일로 영화를 찍는다. 데릭 저먼의 작품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면 극히 개인적인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는 예술적인 홈무비와 어떤 실제 인물에 자기 자신의 독특한 해석을 곁들여 부조리하게 묘사한 미니멀한 전기 영화가 있다. 카라바지오는 후자에 속한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처럼 화면의 인물들은 어둠 속에 얕게 묻어 있는 빛 사이로 윤곽선을 그리며 서 있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곤 하는데 이런 화면의 질감을 위하여 데릭 저먼은 영화를 적은 프레임 수로 촬영한 뒤에 그것을 정상 속도로 재촬영했다고 한다. 다가가서는 안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매몰되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는 공격적인 사랑. 의미 없는 세상에 어느 것 하나라로 움켜쥐고 있어야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받기라도 하듯 카라바지오는 정열로 상처 주고 상처 입는다. 데릭 저먼은 카라바지오를 통해 결국 미학적 욕망과 성적 욕망은 동일선상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회화와 시각 매체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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